아저씨에서‘아이폰’핫 가이로 거듭난 광고회사EPP의 최종인(42) 이사.
어느 날 아이폰이 왔다
그는 원래 전형적인 아저씨였다. 지하철 광고를 다루다 보니 말도, 행동도 거칠었다. 훤칠한 키(1m84㎝)와 외모도 세월 앞에선 무력했다. 얘깃거리라고는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것뿐. 대화가 옹색해지면 폭탄주를 돌렸다. ‘술 배’가 나오고 얼굴은 검어졌다. 중학생인 아들과 언제 말을 섞어보았는지도 가물가물했다.
그러던 그에게 아이폰이 왔다. 아내가 쥐어준 것이다. 그리고 이 남자의 일상이 바뀌었다. 아이폰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연인이 됐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뺏겼다. 그는 새벽 댓바람(오전 5시)부터 일어나 아이폰을 살핀다. 다칠세라 애지중지하고 수시로 충전한다. 누군가 아이폰을 더 잘 아는 것처럼 떠벌리면 질투가 난다. 그런 날엔 밤새워 매뉴얼을 읽는다.
남다른 프로그램을 찾아 10만 개가 넘는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앱 스토어’를 헤맨다. 요즘 가장 열중하는 프로그램은 드럼과 오카리나다. 드럼이 그려진 아이폰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두드리면 영락없는 드럼이 된다. 아이폰 위쪽으로 난 작은 스피커 구멍에 입을 대면 화면은 네 개의 구멍을 표시한다. 청아한 소리를 내는 오카리나로 변신하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열고 막는 시늉을 하면 화면에는 동그란 공기의 파문이 생긴다. 지구 모양을 누르면 다른 사람들의 연주가 실시간으로 검색되는데, 누군가 “삐-익”하며 듣기 싫은 ‘삑사리’를 내도 묘한 동질감 때문에 웃음이 난다.
낯간지러운 짓도 많이 했다. 화면을 보호하는 코팅필름을 붙이다 공기방울이 들어가 떼어버린 것이 세 장이나 됐다. 한 장에 6000원짜리 필름이었다. 하나에 4만~5만원이 넘는 뒷면 보호 커버도 소재별·색깔별로 몇 개씩 사 모았다. 20일이나 걸려 고른 첫 커버는 ‘44’ 사이즈 여성 옷처럼 아이폰에 꼭 맞는다는 병아리색 플라스틱 커버였다. ‘반드시 끼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안내문을 믿고, 30분 넘게 끙끙거렸다. 그런 그를 보다 못해 아내가 대신 커버를 씌워줬다.
사랑 때문에 댄디가 되다
이탈리아산 가죽에 아일랜드산 리넨 실로 작업한 핸드메이드 커버(덱스테너리사진 위). 로즈우드(왼쪽)·비취나무를 손으로 깎아 만든 친환경 커버(애플스킨).
시한부 연애라 더 애틋하다
사랑에는 끝이 있다. 아이폰의 수명도 길지 않다. ‘조로’하기로 유명한 배터리 때문이다. 하드 유저들은 아이폰과의 열애를 길어야 2년으로 본다. 애플의 독특한 애프터서비스(AS) 정책 때문에 중간에 고장이라도 나면 아예 다른 폰으로 바꿔야 한다. 함께 나눴던 추억을 이식할 수도 없다.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수많은 아이폰 중에서 나만의 아이폰이 특별한 이유다.
아저씨는 아이폰을 만난 뒤로 남자가 됐다. 끝이 보이는 연애지만 아이폰 덕분에 청춘을 다시 사는 이 순간을, 온 힘을 다해 즐긴다.
글=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