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슈추적] 강남 전세난 한강 건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서울 강남권에서 전세를 알아보던 김모(41)씨는 최근 광진구 광장동에 전셋집을 구했다. 김씨는 “아파트 전세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방배동의 빌라를 찾았지만 2000만원씩 뛰고 물건도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에 강북의 아파트로 옮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8~9월에 있었던 강남발 전세난이 다시 나타나면서 강북권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빌라나 연립주택의 전셋값도 덩달아 뛰고 있다.

◆재연되는 강남권 전세난=지난해 11월 3억5000만원 선이던 송파구 잠실 트리지움(옛 잠실주공3단지) 109㎡(공급면적)의 전셋값이 최근 4억5000만원으로 올랐다. 같은 크기의 서초구 반포 자이 전셋값은 6억5000만원으로 1년 새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지난해 2월 서울시가 장기전세주택 임대료를 책정하기 위해 이 아파트의 전셋값을 조사했을 때는 3억8000만원 선이었다.

지난해 전셋값이 한창 올랐던 8월 서울 강남구 아파트의 전셋값은 3.3㎡당 평균 925만원이었으나 지금은 985만원이나 됐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인기 학군 지역에서 시작된 전셋값 상승세가 강북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26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전세물건 알림판이 걸려 있다. 이 지역 아파트의 전세가는 미국발 금융위기 때인 2008년 후반에 비해80~100% 급등했다. [연합뉴스]


강남권 전셋값 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수급 불균형이다. 좋은 교육여건과 다양한 편의시설 이용을 위해 강남권 전셋집을 찾는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새 아파트 공급은 거의 끊겼다. 올해 강남권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는 5000여 가구다. 참여정부의 규제 정책으로 5년 이상 재건축 추진이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입주 물량이 감소하면서 입주 3년 이내의 아파트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됐다. 강남권의 전셋집을 찾는 수요자들이 재건축을 기다리는 노후아파트보다는 새 아파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입주한 반포래미안퍼스티지 단지에서는 전셋집이 모자라자 배짱 물건까지 등장했다. 일부 집주인은 4억원대인 79㎡형의 전셋값을 6억원으로 정해 최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내놓기도 했다.

강남권의 경우 기존 아파트값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도 전세 수요 증가를 부추긴다. 앞으로 집값이 오를지 불투명해지자 상대적으로 자금 부담이 적은 전셋집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도곡동의 정수지 공인중개사는 “여유자금이 있어도 집을 사는 대신 전셋집을 찾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며 “보금자리 주택 등 분양가가 싼 아파트에 청약하려고 기다리는 수요자도 많다”고 전했다.

◆강북권으로 확산=전셋값 급등세는 강남권에만 머물지 않고 확산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한강을 넘어 강북권으로 ‘탈출’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이 때문에 강남권과 가까운 광진구 전셋값은 올 들어 22일까지 평균 1.34%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0.29%)을 훌쩍 뛰어넘는다. 새 아파트가 많은 성북구에도 세입자들이 몰리고 있다. 길음동 길음뉴타운 3단지 109㎡형 전셋값이 2억원 선으로 올 들어 2000만원 이상 올랐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올해는 강북권 전세시장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며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한꺼번에 몰려 없어지는 주택이 여느 해보다 많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서울에서만 올해 5만8000여 가구의 주택이 헐린다. 지난해의 두 배 이상이다. 올해 입주 예정 물량이 조금 늘지만 철거되는 주택이 훨씬 많다. 헐리는 집이 다세대·다가구 등 소형 주택이고 새로 생기는 주택은 아파트라는 점도 문제다. 아파트에 들어가 살 여건이 안 되는 서민들의 살 집이 부족한 것이다.

전세난이 심각해지면서 서울에서는 아파트 대체상품인 연립주택이나 오피스텔의 몸값도 뛰기 시작했다. 아파트 전셋집을 구하는 대신 대체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서초구 서초동 LG에클라트 오피스텔 52㎡형의 시세가 1억5000만원 선으로 연초보다 1000만원가량 뛰었다.

성북구 삼선동 명가부동산 서영기 사장은 “연립주택도 전셋값이 뛰고 있고 전셋값이 뛰자 집값도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공급 확대가 해결책=주택은 단기간에 만들어내는 상품이 아니므로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 전세난을 바로 해결할 묘안은 없다. 이런 가운데 부동산 현장에서는 정부의 탁상행정을 지적하기도 한다.

정부는 지난해 소형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단독주택이나 상가를 헐고 소형 주택을 많이 짓는 도시형 생활주택 모델을 내놨다. 그러나 땅값만 비싸 수익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민간 주택업자들이 공급을 기피하고 있다.

정부가 전세시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현장조사를 등한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해양부는 26일 서울 전셋값 상승세는 강남권과 목동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된 국지적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국토부는 서울 강남권 3개구와 양천구의 최근 3주간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 평균은 0.4%이지만 나머지 21개 구는 0.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시세 통계는 현실과 다르다. 전셋값 통계는 전체 지역을 평균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개별 전세계약의 변동폭이 반영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재건축 규제 등을 더 풀어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전세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규제 완화 이후 단기간에 집값이 오르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봤을 때 재건축 공급을 빠른 시일 내에 늘리는 것 외에 전세시장 불안을 잠재울 방안은 없다”며 “다소 혼란이 있더라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재건축은 활성화하고 재개발은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함종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