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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대학강사의 절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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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학 시간강사들의 별명은 많다.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린다고 해서 '보따리 장사' , 마누라 등쳐 먹고 산다고 해서 '등처가' , 등치지는 않지만 업혀 산다고 '업처가' 등등…. 대부분 시간강사 스스로가 붙인 자조섞인 별명이다.

물론 어떤 여성강사는 집안일과 연구.강의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고 스스로를 '번개전사' 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걱정스럽게 묻곤 한다.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우리 부부는 둘 다 대학의 시간강사다. 그러다 보니 매일 서로를 등치고 산다.

"잘 다녀와. 힘내" 라고 말하면서. 덕분에 우리 가정은 비교적 민주적이다. 얼치기 주부 역할에 서투른 가장, 불성실한 연구자에 선생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며 '일용 잡급직 노동자(노동부의 직업분류다)' 로 산다는 것은 만만찮다.

둘이 번다고 해봤자 매월 적자다. 더군다나 한 해 두 번의 방학동안은 완전 실업자가 된다. 대학의 방학은 왜 그리 긴지 모르겠다. 올 겨울 방학도 벌써 찬바람과 함께 코앞에 닥쳤다.

언젠가 한 아르바이트 학생이 시간당 강의료를 물은 적이 있다.

아마 강사문제를 다룬 신문을 읽고 나름대로 걱정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놀랄 것으로 믿었던 학생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래도 저희 시간당 아르바이트 보수보다는 많이 받으시네요. " 참고로 대학의 시간당 강의료는 대학마다 많은 차이가 있지만 나의 경우 한 학교는 1만8천원, 다른 학교는 2만6천원이다.

대학의 시간강사는 물론 강의한 시간만큼만 돈을 받는다.

그래서 강의준비를 하거나 수북이 쌓인 리포트와 씨름할 때, 또 방학이 시작되고 며칠동안 밤새워 기말시험 채점할 때는 간혹 억울한 생각도 든다.

강의와 관련한 가외의 노동은 그야말로 전적으로 무보수다. 적은 보수에 비해 가히 천문학적인 투자비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어느 강사는 "박사학위를 반납하고 싶다" 고 했을까.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학문연구를 보람으로 여기며 버텨내고 있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그런 희망조차 여지없이 무너져 회의감에 빠지게 하는 일이 있으니 그 하나는 공공연한 차별이다.

시간강사도 대학의 한 주체다. 임금은 마이너리그 수준도 안되지만 대학교육의 거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조차 정식 교원대접을 않는다. 물론 같은 일을 하면서 턱없이 차이가 나는 임금이 그 차별의 핵심이지만 종종 그나마 남아 있던 자존심까지 위태로울 때가 많다.

가령 학생들이 '강사님' 이라고 부른다든지, 휴게실을 만들어 놓고도 '강사 대기실' 이라 써 붙여 놓은 따위는 애교로 봐 줄 수도 있다.

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만들어 주면서 전임교수들의 보증을 요구한다든지, 교수들보다 오히려 먼거리를 이동하면서 강의를 해야 하는 강사들의 처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주차제한을 하거나 턱없는 요금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도 한때의 투덜거림으로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강사 강의의 질을 의심하는 태도는 도저히 참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희망 자체가 점점 희미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법정 교수확보율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요즘 대학들의 교수확충은 강사들이 느끼기엔 실망스럽다.

특히 인문학 분야는 매우 심각하다. 박사학위를 받고도 전임으로 나가지 못하는 인원이 점점 늘어만 간다. 하긴 요즈음은 시간강의조차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박사학위 소지자로 한정하고 있는 추세다.

거기다가 학생들의 졸업 이수학점을 대폭 줄이면서 많은 교양강좌들이 폐강되고 있다.

대부분의 교양강좌를 시간강사가 맡아 왔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나마 시간강사들은 설 땅이 사라지는 셈이다.

강사들의 위기는 대학과 학문의 위기와 맞물린다. 누가 이런 선배 연구자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보고 학문의 길로 들어서겠는가. 강사 자신들이 겪는 애환과 희망을 담아 펴낸 책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본다.

'대학이여, 우리는 희망없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 .

유병관 (문학박사.성균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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