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정부, 대북 채널 바꾼 배경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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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택 통일부 장관 (左),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右)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5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금강산·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다음 달 8일 개성에서 열자”고 제의했다. 현 장관은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3명의 회담 대표를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14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금강산·개성관광 회담을 26일부터 이틀간 개성에서 개최하자고 통보해온 데 대한 수정 제안이다. 통일부 장관이 장관급인 통전부장에게 공식 서한 성격의 전통문을 보낸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이다. 현 장관이 전통문을 김 부장 앞으로 보낸 것은 향후 남북대화에서 통전부장을 상대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전부장의 상대는 국정원장이 아닌 통일부 장관이라는 메시지다. 이번 제안은 대남·통일 문제를 총괄하는 김양건 부장과의 대화채널이 필요하다는 현 장관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지난해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북한 조문단의 서울 방문을 계기로 대면했다. 이후 접촉은 없었지만 장관급 당국대화가 재개될 경우 현인택-김양건 라인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통일부 안팎에서 제기돼 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남북회담의 격(格)을 둘러싼 논란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북한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장관급 회담 때 차관급에 불과한 인물을 ‘내각 책임참사’ 자격으로 회담 대표를 맡게 했다. 현 장관 명의의 전통문은 기존의 남북 장관급 회담의 틀로는 가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한 셈이다. 아태평화위 명의의 대남 제의에 대한 답을 당 통전부장에게 준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김양건 부장은 아태평화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통전부로 못 박은 건 금강산·개성관광 재개는 반드시 당국 간에 논의할 사안이란 정부 인식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북한 경비병이 여성 관광객 박왕자씨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케 함으로써 중단됐다. 당국자는 “재개를 위해서는 신변보장 조치와 재발 방지 약속이 필수적인데 이는 당국 간 합의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노동당 외곽기구인 아태평화위가 당국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현대아산과 금강산·개성관광을 진행하는 북측 사업자란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이종혁 아태 부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요청해 왔지만 무게를 두지 않았다. 결국 아태평화위가 전통문까지 보내왔지만 통일부는 통전부가 나서라고 압박하는 답장을 보낸 것이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아태평화위는 1994년 출범 때 ‘비정부적 평화애호 기구’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며 “대북 전통문에서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와야 한다고 북한에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국방위원회의 대남 보복 성전(聖戰) 위협 와중에 회담을 제안하는 북한의 강온 양면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정부의 뜻도 엿보인다. 국방부도 북한이 26일 열자고 제안한 군사 실무회담에 대해 이례적으로 “적절한 시점에 회담 개최 일자를 통보하겠다”고 일단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통일부는 북한이 수용 의사를 표시한 대북지원 옥수수 1만t의 운송계획을 통보하는 등 당근도 던졌다. 당국자는 “남북대화 전면에 나서지 않아온 통전부가 우리 제의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대북 접근 속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최근 남북관계 흐름]

▶ 1월 1일 북한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남대화·관계개선” 강조

▶ 7일 현인택 통일장관 언론 인터뷰에서 “김양건 통전부장 만날 용의”

▶ 14일 아태평화위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회담 26~27일 하자” 제의

▶ 15일 북한 국방위 “(급변사태 계획 보도에) 보복 성전 개시될 것”

북한 적십자회 “대북지원 옥수수 1만t 받겠다” 통보

▶ 19~21일 남북 개성공단 관련 접촉

▶ 22일 북 군사실무회담 단장 “26일 회담 열자” 제안

▶ 24일 북한군 총참모부 “북핵 선제타격론은 노골적 선전포고”

▶ 25일 현인택 통일장관, 김양건 통전부장에 “금강산 회담 8일 열자”

▶ 2월 1일 개성공단 통행·기숙사 문제 실무회담(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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