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별이 뜨고
강물에 얹혀 달이 흐릅니다
구름이 몸을 숨깁니다
바람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나뭇잎들 흔들리며 울고 웃습니다
상처난 구멍들이 뒤척이는 잎에
배꼽처럼 박혀 있습니다
뚫린 구멍마다
하늘이 가득합니다
베어져 쓰러진 나무들 둥치에서
엷게 진하게 얼룩진 나이테를
줄 선 길을 따라 봅니다
길 위의 길들이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있습니다
- 천수이(55) '길들이 귀를 열고' 중
날마다 걷는 낯익은 길, 항상 열려 있는 길이 있는 세상, 그러나 길은 날마다 낯설기도 하고 또한 언제나 닫혀 있는 것, 오늘 천수이는 그 길 위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삘기처럼 뽑아 상큼한 물을 입안에 적신다. 나뭇잎에 뚫린 구멍에 가득한 하늘, 쓰러진 나무둥치에 얼룩진 나이테. 길 위에서 귀를 열고 있는 길들이 있어 오가는 계절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다.
이근배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