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ASEM에 바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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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도의 뭄바이(옛 봄베이)에서 출생한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19세기 말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둘은 결코 만나는 일이 없을 것" 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대영제국의 제국주의적 해외팽창을 예찬하던 그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백년이 지난 지금 세계화의 물결은 유럽과 아시아를 구별짓던 경계선을 지우고 유라시아대륙 전체를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키워내고 있다. 서울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는 기자이기도 했던 키플링이 상상도 할수 없었던 '사건' 이다.

간단한 통계를 보자.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에 아시아와 유럽의 교역량은 3천80억달러로 같은 시기 유럽과 미국의 교역량 2천9백54억달러보다 많았다.

아시아의 금융위기 극복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당연히 미국일 것이라는 통념도 사실과 다르다. 유럽연합(EU)은행들이 아시아에 1천60억달러의 돈을 빌려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 은행들은 1백80억달러를 빌려주는 데 그쳤다.

한국만을 떼어놓고 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EU는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한국의 셋째 교역 파트너로 지난해 한국의 EU에 대한 수출은 2백5억달러였다. 그리고 지난해 EU는 미국과 일본보다 많은 63억달러를 투자했다.

한국이 경제관계와 외교에서 미국과 일본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위론에는 누구나 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경제.외교.문화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일본 것에 익숙한 타성을 벗지 못한다.

미국을 상대로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는 것이 격식이 까다롭다는 유럽사람들을 상대로 새로운 행동양식을 익히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아시아와 유럽의 거리는 유럽쪽에 키플링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아시아 사람들, 한국 사람들도 유럽과 미국에 대해 균형잡힌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ASEM은 거기서 꼭 어떤 합의가 이뤄져서가 아니라 동양과 서양이 그들이 말하는 '극동' 에서 만난다는 사실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가장 미래지향적인 행사다.

유럽에서도 고대로부터 아시아와의 유대관계에 눈을 돌린 지도자가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그중 한사람이다.

그는 사부(師父) 아리스토텔레스한테서 그리스의 국경선 밖에 사는 인간은 모두 야만인 아니면 노예라고 배웠다.

그러나 페르시아에 원정한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인들이 그의 스승이 말한 대로 야만인도 노예도 아닌 것을 알았다.

그는 페르시아인들을 고위관리로 기용하고 자신은 다리우스왕의 딸과 결혼했다. 그리고는 부하 장수들에게도 현지여성들과 국제결혼을 하라고 독려했다.

'영웅전' 으로 유명한 플루타르크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서화합 정책을 전해 듣고 "그거야말로 현명한 국왕들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이라고 갈파했다.

그는 그리스를 정복해 아시아와 유럽을 분단하는 헬레스폰트를 연결하려고 했던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를 미련한 바보라고 말했다.

헬레스폰트는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오는 긴 해협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천연적인 경계선이었다.

ASEM은 타이밍도 좋다. 오랜 고립과 일국 사회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북한의 신사고(新思考)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의미있는 결실을 보려고 하는 시점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으로 남북간 평화의 프로세스가 탄력을 받을지도 모른다. 경의선 철도의 연결은 유라시아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25명의 현대사의 주인공들을 한꺼번에 맞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다양한 이해를 가진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총리들의 회의에서 아시아.유럽의 현안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이 회의를 계기로 우리 의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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