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구단 대신 19단, 거침없는 영어가 '인도 파워' 원동력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인도 IT 인력과 과학기술 인력의 산실인 인도공과대 델리 캠퍼스에서 컴퓨터 공학과 학생들이 과제물 작업을 하고 있다. 2.벵갈루루의 인도 과학원. 100년 전 세워진 연구 중심 기관으로 현대 인도 과학기술의 모태 역할을 했다. 3.델리의 공무원 자녀 학교인 산스크리티 스쿨 학생들이 교정에서 쉬고 있는 모습. 신인섭 기자

인도의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기초과학의 파워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3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를 비롯, 물리학· 의학· 경제학 노벨상 수상자를 4명이나 배출했다. 두 차례 핵 실험에 성공했고, 무인 달 탐사 위성 발사에 성공한 항공우주 강국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의 36%, 마이크로소프트(MS) 소속 엔지니어 34%가 인도인이다. 90년대 후반부터는 IT 산업의 신천지, IT 파워의 인큐베이터로 각광받았다. 25일 한·인도 정상회담 이후 가속화될 한국과 인도의 협력사업 핵심도 IT를 포함한 과학기술 분야다. 정부는 인도와의 IT·과학기술 협력사업에 5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남부 해발 950m의 데칸고원에 위치한 카르나타카주 벵갈루루시는 인도 IT의 힘, 나아가 인도의 성장 잠재력을 공항에서부터 느끼게 해 주는 도시다. 스모그 가득한 델리와 공기부터 달랐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도로변에는 오라클과 IBM, 휼렛패커드 등 IT 관련 대기업의 광고판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교통 체증은 델리와 다를 바 없었고, 소달구지가 길을 방해했지만 얼마 안 가 “여기가 인도인가”생각되는 첨단 빌딩 단지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벵갈루루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곳이다. 600만 도시인구의 절반이 IT 전문 인력이자 과학자다. 103개 업체에 6만 명이 고용된 E-시티 단지, 145개 기업에 2만4000명 이상이 고용된 인터내셔널IT 파크에는 생명공학과 소프트웨어, 통신 등 최첨단 업종의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각 단지의 규모는 33만㎡(약 10만 평)를 오르내린다.

주정부가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면제해 주고 초고속통신망을 깔아 주는 등 인센티브로 유치한 결과다. 인포시스·위프로 등 세계적 규모의 인도 자생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위프로의 IT 인력은 9만6000명. 전 세계에 58개 지사를 두고 있다. 벵갈루루에는 직원 수 10만 명인 업체가 5개, 1만~2만 명을 고용한 업체 수는 100여 개다.

인도의 실리콘밸리 벵갈루루. 공항을 나서는 길목에 IT 관련 기업들의 광고판이 즐비하다. 신인섭 기자

인도의 IT 산업은 매년 30% 넘게 성장했다. 2008년도엔 수출액이 7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25% 상승했다. 하지만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6% 수준. 전체 총생산 대비 비중과 인도 전체의 열악한 인터넷 인프라를 거론하며 인도 IT 파워는 ‘허상’이란 지적을 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컴퓨터를 만져 보지도 못한 사람이 수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의 IT 파워는 강력한 인적자원이며 이들의 세계무대 활동은 인도발전의 동력이다.

무엇이 IT와 BT, 기초과학의 파워를 가능케 했을까. 높은 수학 수준과 영어 구사력, 정부의 투자로 가능했다는 게 인도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답변이다. 신분제도인 카스트가 아직 인도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IT 같은 과학 분야 진출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인식된 측면도 크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보다 학부 수준이 앞선다는 인도공과대(IIT) 델리 캠퍼스를 찾았다. 이 대학 후주어 사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수학과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꼽았다.

“수천 년 역사를 거치며 다양한 문화와 종교 속에서 살아온 인도인의 삶은 자연스레 본능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으로 이어진 것 같다.” 사란 교수는 고대 인도인들이 0의 개념과 아라비아숫자를 발견했다며 강한 수학적 사고가 인도인의 머릿속에 쌓여 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70~80년대 컴퓨터가 세상을 강타했을 때 인도 공학도들이 서구로 가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이들이 80년대 후반, 90년대 귀국해 후학들을 가르치고 연구 활동을 한 게 현재 IT 강국의 힘이 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영어 구사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인도는 200년 넘게 영국 식민 지배를 받았다. 독립 후에도 영어는 계속 사용했고, 지금도 대학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다. 수학·과학·의학 등 대부분의 책이 영어로 씌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는 게 사란 교수의 설명이다. 지금도 주마다 힌두어를 포함, 18개 공용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회 전반에선 영어가 통용된다. 사란 교수는 “초·중·고교에서도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가 상당수”라고 했다. 자유로운 영어는 인도인들이 영·미권으로 유학을 쉽게 떠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업체들이 인도에 지사나 콜센터를 두고 시차를 이용, 24시간 연구하는 기지로 삼았는데 이 역시 인도 IT 파워 구축의 강력한 힘이 됐다.

인도공대 입시전문 도시도 생겨
델리 시내 ‘산스크리티 스쿨’을 찾았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12학년)까지 공무원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고급 학교다. 유치원 때부터 수학을 배운다고 한다. 디누 라헤제 중학생(6~8학년) 담당은 “주로 게임을 하며 흥미를 일깨우고,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컴퓨터와 퍼즐로 수학과 가까워지도록 해 준다”고 했다. 라헤제 주임은 ‘19단을 암기하느냐’는 질문에 3~4학년 때부터 13단을 외우는데 19단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교민들에 따르면 보통의 초등학생들이 저학년 때 19단을 모두 외운다고 한다. 사란 교수는 “각 학교는 7~8학년부터 수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문제 수준은 매우 높다”고 했다. 산스크리티 학교 학생들의 매거진에는 과목별로 1등 한 학생들의 명단을 실었는데 수학의 경우 만점자 12명이 공동 1위로 소개돼 있었다. 라헤제 주임은 “1년에 전국 수학 올림피아드가 한 차례 있고, 고학년의 경우 학교 간 대항전을 한다”며 “학생들이 대항전을 즐긴다”고 했다.

IIT는 고교 졸업생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학교다. 전국에서 치러지는 대입 고시(CBSE)와 별도의 전형으로 신입생을 뽑는다. 델리에서 511㎞ 떨어진 코타란 곳은 IIT 입시인 IIT-JEE(Joint Entrance Examination) 전문학원으로 가득하다. 인터넷에는 학원을 소개하는 사이트가 수두룩하다. 수년 전부터 코타시는 ‘학원 도시’로 거듭났다고 한다. 12학년을 졸업한 뒤 1년간 코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 뒤 시험을 치르는 학생도 많다. 사란 교수는 “40만 명이 시험을 봐서 4000명을 뽑는데 이 가운데 상위 500명은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한다”고 했다.

IIT는 과학 인력은 정부가 키운다는 철학을 바탕에 깔고 50년대 설립됐다. 4년제 학부생의 경우 연간 1000달러를 내지만 대학원생들은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 카스트 간 격차를 좁히기 위해 입학 정원의 절반 정도를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 등 하위 계급에 할당하고 그들이 수업을 따라오지 못할 경우 특별 보충수업을 해 준다고 한다. 사란 교수는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대학은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며 “10% 정도는 힘들어하지만 1년의 유예 기간을 줘서 마침내 IIT인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학비는 무료다. IIT를 졸업한 사람들은 IITians로 불린다. 전 세계 IT 업계 등의 최고경영자(CEO)로 진출했다. 인도 인포시스의 창업자 나르야나 무르티,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 아룬 사린 보다폰 CEO 등이 있다. 사란 교수는 “비노드 코슬라가 최근 500만 달러를 IIT에 기부했다”고 소개했다.

인도도 기초과학 분야보다는 돈벌이가 되는 IT나 의대 쪽으로만 인재가 몰리는 바람에 고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대책은 확실했다. ‘과학기술 인도’의 심장부로 꼽히는 벵갈루루의 인도과학원(IISc) 재료공학과의 아쇼크 라이처 교수는 “고등학생 가운데 우수 학생을 선발해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정부가 학비와 기숙사비 등 일체를 전액 지원한다”고 했다. 인도과학원은 타타그룹의 창업자인 잠세트지 누세르완지 타타가 1911년 재산의 반을 기부해 설립한 대학원 중심의 연구기관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찬드라세카르가 이곳 출신이다.

한국 IT 인력의 세계 진출 위한 인큐베이터
벵갈루루의 위프로에 근무하는 김창수(33)씨는 입사 4년 차다. 국내에서 한 건설회사의 IT 지원실에서 일했다는 그는 “벵갈루루, 아니 인도는 한국 IT 인력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와 달리 자신의 전공 역량을 마음껏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기준으론 월급이 많지 않지만 7~8년 차가 되면 연봉 6000만~7000만원은 너끈히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 IT 업계 초봉은 80만원. 인도의 교사 월급의 두 배이고 의사·변호사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20~30대가 만족하기 힘든 수준이다. 김씨는 “하지만 이곳에서 IT 경력을 쌓고 영어 실력을 다지면 전 세계 어느 회사에서도 환영받는 인재로 클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인도 대학생들의 경우 졸업 후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무 능력을 갖고 있다”며 “IT 인력의 이직률이 높지만 팀원 가운데 몇 사람이 빠지고 신규 인력이 들어와도 작업이 차질 없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잘 갖춰 놓고 있다”고 말했다.

델리=김수정 기자 sujeong@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