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전립선암, 간단한 피검사만으로도 중년남의 삶이 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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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암으로 신음하는 ‘한국 아버지’가 늘고 있다. 고령화서구화된 식단, 검진율 증가가 주요 원인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2009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00년 1304명이던 국내 전립선암 발생자 수는 2004년 3330명, 2007년 5292명으로 7년 새 네 배 가까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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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모(66·남)씨는 18일 오후 세상과 등졌다. 강씨는 배뇨장애가 있었지만 한참을 버티다 2003년 9월 병원을 찾았다. 전립선암 4기였다. 척추·폐·간까지 암이 번져 의료진도 수술을 포기했다. 김씨는 수술 이외의 치료를 모두 받으며 6년을 넘게 생존했다. 서서히 진행하는 전립선암의 특징이다. 그러나 강씨와 가족의 삶의 질은 바닥에 떨어졌다.

#2

문모(69·남)씨는 2007년 7월 식구들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운 좋게 혈액 검사에서 전립선암을 발견했다. 다행히 1기였고 전립선만 드러냈다. 문씨는 수술 한 달 후 집 근처 관악산에 오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부부관계도 만족스러웠다. 그는 “주치의가 완치나 다름없다고 했다. 20년은 더 살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7년 새 암 발병 증가율 ‘1위’

전립선암은 ‘소리 없는 암’ ‘아버지의 암’ ‘황제의 암’으로 불린다. 넬슨 만델라·덩샤오핑·미테랑·노태우 등 한 나라의 권자에 올랐던 사람들이 투병해 많이 알려졌다. 전립선암은 초기에 자각증상이 없고, 대부분 50대 이후에 발병한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새롭게 암으로 진료 받은 환자의 증가율도 전립선암이 13.8%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국민건강보험공단) 췌장암(10.7%), 대장암(7.3%), 유방암(6.7%)이 뒤를 잇는다. 전립선암은 2005년부터는 위·폐·대장·간 다음으로 남성 5대 암에 진입했다. 10년 내에 남성 암 3위로 올라선다는 전망도 있다. 전립선암 치료에 드는 총 진료비도 2001년 94억원에서 2008년 800억원으로 뛰었다.

다행인 것은 전립선암의 생존율도 다른 암과 비슷하게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 의학적으로 완치를 의미하는 5년 이상 생존율이 1993~95년에는 55.9%에 그쳤다. 하지만 2001~2005년은 78.6%, 2003~2007년에는 82.4%로 높아졌다.(국가암등록통계)

초음파·혈액 검사로 조기 검진

전립선암의 생존율이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하면 90% 이상이 완치되는 ‘착한 암’이라는 별칭에 비하면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의 99~2005년 전립선암 생존율은 99.7%를 나타내 비슷한 기간 우리나라와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전립선암은 전형적인 서구형 암이다. 미국 남성암 발병률 1위를 차지해 조기 검진율이 높은 결과다. 전립선암의 조기 검진법에는 초음파·PSA 검사, 항문을 통해 직장으로 손을 넣어 확인하는 직장수지검사가 있다.

미국은 50세 이상 남성의 약 75%가 간단히 혈액검사를 통해 전립선암 여부를 예상할 수 있는 PSA 검사를 받고 있다. PSA는 전립선에서 생산되는 효소의 일종으로 전립선암이 생기면 혈중 수치가 올라간다. 수치가 3 이상이면 암을 의심하고, 20 이상이면 80%가 암으로 판명난다. 50이 넘으면 대부분 4기여서 주변 뼈와 장기로 전이된 상태다. 대부분의 미국 남성들은 본인의 키·몸무게와 함께 자신의 PSA 수치를 알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5년 기준 PSA 검사율이 15%, 최근엔 30% 미만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대한비뇨기과학회)

가천의대 길병원 비뇨기과 윤상진 교수는 “2008년 기준으로 위·폐·대장·간·유방 등 8개 주요 암의 국내 생존율은 미국과 대등하거나 높다”며 “하지만 전립선암에서 많이 차이가 나 9개 주요 암의 생존율이 미국의 65.3%보다 낮은 52.2%”라고 말했다.

국가암검진에 전립선효소검사 포함해야

전립선암의 국가암검진사업 포함 여부를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립암센터에서도 전문가들이 수차례 간담회를 했다. 조기에 발견만 하면 생존율을 미국처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50세 이상 남성에게 PSA 검사를 해주자는 것이다. 

대한비뇨기과학회 백재승(서울대병원 비뇨기과) 회장은 “저비용 검사로 일찍 발견하면 이점이 많은 대표적인 암이기 때문에 국가가 선제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비뇨기과 이영구 교수도 “미국은 전립선암 조기 검진으로 고위험 암이 약 15%로 줄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약 6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다른 암은 말기면 1, 2년 내에 사망하는데 전립선암은 4~7년은 살기 때문에 삶의 질을 위해 조기검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PSA 검사비는 병원급에서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면 1만800원, 혜택을 못 받으면 1만8005원이다. 국가암검진사업에 포함된 5대 암(위·대장·유방·간·자궁경부암)에 여성은 모두 포함된 것과 달리 남성은 3개만 해당돼 역차별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는 전립선암의 국가암검진사업 포함 여부에 신중한 입장이다. 재정확보, 암 확진 후 후속조치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전립선암 증가율이 높지만 전체 암의 비중은 약 3%로 높지 않고, 암의 위급성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사업에 포함하기 위해선 타당성 연구와 재정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단 전재관 과장은 “암이 있더라도 평생 불편 없이 사는 환자를 찾아내 부담을 안겨주는 것보다 치료 중·후의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비뇨기과학회는 전립선암을 국가암검진 사업에 포함하면 수검률이 20%일 때 100억원, 30%면 140억원이 소요된다고 추산한다.

글=황운하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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