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DJ와 브란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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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지금까지 추진해온 그의 '햇볕정책' 은 더욱 단단한 반석 위에 놓이게 됐다.

노벨위원회는 金대통령의 공적이 민주주의와 인권증진, 그리고 남북한 화해에 대한 기여라고 밝히며 특히 남북 정상회담 개최로 한반도에 평화의 물꼬를 튼 대목을 강조했다.

*** 노벨상.화해정책 닮은꼴

金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분단국의 화해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 옛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다.

동서 냉전이 피크였을 때 그는 대(對)동독 화해의 '신동방정책' 을 추진함으로써 1971년도에 수상했다.

브란트의 노벨상 역시 그의 '신동방정책' 을 굳건하게 하는 힘이 됐다.

69년 연립정부 총리직에 오른 브란트는 그 때까지의 통일정책, 즉 동독을 서독에 합병시킨다는 이른바 힘의 우위정책을 과감히 포기한다.

기존의 통일정책은 철저한 반공주의로 동독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국제사회로부터 동독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강경 노선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봉쇄정책은 통일을 진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분단을 심화시켜 왔다는 게 방향선회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신동방정책은 한 마디로 무력포기에 의한 '선평화 후통일' 이다.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고 동독정권을 안정화시킴으로써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현상'(status quo)'유지 정책이 핵심이다.

신동방정책에 대해 야당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반공이념을 무력화하고 전체주의 범죄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함으로써 자유와 민주주의의 신념을 흔든다고 비난하고 적화통일의 길을 닦아주는 격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브란트는 물러서지 않고 70년 동독정부를 사실상 승인하는 독.소조약과 독.폴란드 불가침조약을 체결했고, 그해 두차례 양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독간 경제교류협력도 증진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야당측의 불신임투표 공세로 극히 위험한 지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브란트는 화해의 기조를 후퇴하지 않았다.

노벨상이 수여된 뒤론 야당측의 태도가 다소 달라졌다.

정책추진과 방법.전략에 대해선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지만 신동방정책의 큰 줄기는 존중됐다.

역사적인 양독 기본조약이 체결된 것도 노벨상을 받고난 이듬해다. 여야가 뒤바뀐 뒤에도 브란트의 신동방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됐고 대망의 통일 역시 그 바탕 위에서 달성된 것이다.

대결구도를 깬 화해정책, 야당의 반발, 그리고 노벨상까지 당시의 서독과 요즘의 한국 상황이 그대로 닮았다.

그렇게 닮은 대로 우리도 자유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통일이 빨리 달성됐으면 하는 희망을 품게 한다.

다만 DJ의 '햇볕' 에선 보이지 않는 게 한가지 있다. 야당비판에 대한 정부의 수용 자세다.

당시 서독 야당들은 연립정부가 동쪽과의 협상을 서두르느라 너무 양보하고, 주는 데 비해 받는 게 별로 없어 결과적으로 "국가이익을 팔아 먹는다" 고 몰아붙였다.

또 협상과정이 비밀 위주여서 투명하지 않고, 조급하며, 야당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는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요즘 우리의 야당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그대로다.

*** 야당비판 수용 본받아야

브란트 연립정부는 야당측을 설득하는 한편으로 부분부분 야당의 견해를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했다.

특히 야당이 줄기차게 지적한 상호주의는 그후 정부차원 경협에서 협상카드로 활용됐다.

당시 야당에 몸담았던 헬무트 콜이 총리가 된 뒤 83~84년 서독은 동독에 모두 24억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한다.

동독정부는 반대급부로 민간인 상호방문 인원 확대, 국경검문 완화, 편지.소포검열 대폭 완화, 인권문제 개선 등의 서독측 정치적 요구를 수용했다.

민간지원이 아닌 경우 돈이 가면 크건 작건 상응하는 대가가 왔다. 우리처럼 그냥 쌀만 건네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당시 야당의 비판은 브란트 정부의 낙관 일변도 통일정책에 긴장감을 넣어줬고, 협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순기능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은 노벨상으로 확고한 지위를 얻게 됐지만 그 밑바탕에서 야당의 매운 비판이 가미됐기 때문에 더욱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는 교훈이다.

DJ의 '햇볕' 도 비판과 반대의견을 달게 받아들이는 데서 더욱 빛을 발하리라고 믿는다.

허남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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