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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잘하면 월급 2~3배…삼성·LG·현대는 꿈의 직장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델리대 한국어학과의 수업 모습(위). 김도영 교수(아래사진 왼쪽에서 셋째)가 연구실에서 제자 타룬·응암·라즈(왼쪽부터)와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삼성·LG·현대 같은 데 들어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한국 DVD 봐요. ‘미녀는 괴로워’도 봤어요.”

눈 감고 들으면 한국인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분명한 발음이다. 델리대학교 동아시아학과 한국어 과정 3년차인 수바시 라즈(21). 이 대학 한국학과 김도영(60) 교수의 수업을 들은 뒤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한국어로 쉴 새 없이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연구실에서 함께 만난 라즈와 코틸 응암(21), 쿠마르 타룬(29)은 김 교수의 애제자다. 힌디어 발음으로 표기한 영한·한영 합본 사전 제작을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어과로 학사 편입한 타룬은 “한국이 많은 발전을 이뤘는데, 그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싶다”는 그는 한자를 함께해야 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고향 마을은 수년 전부터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미얀마 접경 마니푸루주 출신인 응암의 얘기다.

2002년부터 델리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 교수는 “삼성과 LG의 가전 제품, 현대차가 인도 시장을 파고 들면서 젊은 층에 한국 붐이 조금씩 일고 있다”면서 “한국어학과 입학 경쟁률이 3대1을 넘는다”고 했다. “수료증(Diploma)을 받고 실력이 좋으면 곧바로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나 위프로 같은 인도 기업, 오라클 등 해외 기업에 취직이 되기 때문”이라는 게 김 교수 설명이다. 보통의 대학 졸업생들이 기업에 취직하면 초봉으로 1만 루피(약 25만원)를 받지만, 한국어 능력을 인정받으면 2만~3만 루피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인도인들의 한국어 습득 속도를 물어봤다. 김 교수는 힌디어 어순이 한국말과 같고, 한국말처럼 주어 없이도 문장이 되는 '상황어'여서 학생들이 한국어를 쉽게 배운다고 했다. 특히 어려서부터 영어와 힌디어, 각 지방의 공용어를 함께 사용하는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인도인들의 외국어 습득력은 뛰어나다고 한다. 인도인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는 한국 교민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특히 힌디어 발음엔 영어와 달리 경음이 있어 한국어 발음을 흡사하게 낸다. 수바시는 사전을 보며 “압축” “끝까지” 같은 발음을 쉽게 해보였다.

인도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어를 보급해 온 주역이 바로 김도영 교수다. 고려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88년 자화할랄 네루대로 유학 와 '인도 영문학'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영문학은 대학시절 부전공이었다. 95년 네루대에서 강의를 하던 중 한국어 교육과정이 개설됐고, 한국어과 객원교수로 위촉돼 한국어를 가르쳐 왔다. 김 교수는 네루대에 한국어 석사 학위 과정까지 만든 뒤 2002년 델리대로 적을 옮겼다.

네루대 한국어학과 인도인 교수 4명 가운데 3명이 김 교수가 가르친 제자다. 델리대 한국어과 1, 2, 3학년 학생은 모두 100여 명. 매주 4일 1시간30분씩 수업한다. 한국어학과는 일본·중국어에 비해 역사가 짧다. 중국어·일본어과는 50년 전에 개설됐다. 지금도 중국어·일본어를 배우는 학생 수가 각각 200여 명으로 한국어 전공자의 두 배다. 일본학과와 중국학과는 박사과정까지 있지만 한국학의 경우 석사과정도 없다. 한·인도 간 교류가 그 정도로 없었단 얘기다.

“인도 정부 관료나 지도층 가운데 한국말을 하는 이가 없습니다. 한국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죠.” 하지만 최근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어 지원 학생들이 중국·일본어 다음 3지망이 많았지만, 최근엔 1지망에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도 상당수라는 것. 김 교수는 “기업들이 인도 사회를 파고 든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 국제교류재단의 후원도 상당하다. LG·신한은행은 한국어 전공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김 교수의 방에는 세계 한국어 웅변대회에서 1등 한 제자들의 사진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델리=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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