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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태 총재님, 일어나세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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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35면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했다. 처음엔 토끼가 한참 앞서나갔다. 그런데 거북이가 어느 순간 역전을 했다. 다 알다시피 토끼가 낮잠을 잤기 때문이다.

On Sunday

요즘 금융시장을 들여다보다 생각난 이솝 우화의 한 토막이다. 여기서 토끼는 정책금리, 거북이는 시장금리에 비유할 수 있겠다. 2008년 9월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자 토끼(정책금리)는 기민하게 달려나갔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여섯 차례에 걸쳐 금리인하에 나섰다. 그는 연 5%였던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2%까지 낮췄다.

거북이(시장금리)는 열심히 토끼의 꽁무니를 쫓아갔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내릴 때마다 시장금리도 뚝뚝 떨어졌다. 시장의 지표가 되는 국고채(3년 만기) 금리는 연 6.01%에서 3.26%까지 낮아졌다. 덕분에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줄었다. 은행 대출 창구의 문턱은 위기 전보다 다소 높아지긴 했다.

그러나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우리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선 데는 이렇게 한은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달리던 토끼가 갑자기 낮잠을 잤다. 벌써 1년이 됐다. 정책금리는 지난해 2월 이후 요지부동이다. 그동안 시장금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지난해 10월 한때 연 4.62%까지 오르더니 지금은 연 4.2~4.4%로 낮아졌다. 시장다운 활발한 움직임이다. 토끼는 자고 거북이는 움직이다 보니 두 금리의 격차는 2%포인트가 넘는다. 이로써 토끼는 달리기 경주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지금이라도 토끼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시장이 보내는 신호는 확실하다. 한은은 이미 정책금리를 올릴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이성태 총재의 결단이 필요하다. 3월 말이면 이 총재의 3년 임기가 끝난다. ‘이성태 시대’의 성패는 앞으로 두 달에 달려 있다.

고민거리는 없지 않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올리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난다. 그러면 가계에서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 기획재정부는 그걸 염려한다.

부분적인 해결책은 나왔다. 은행연합회는 최근 새로운 대출 기준금리로 ‘코픽스(COFIXㆍ자금조달비용지수)’를 개발했다. 코픽스는 오르고 내릴 때 기울기가 완만한 것이 특징이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올려도 코픽스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제 ‘물가안정’이란 한은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때다.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완화를 위해 기준금리의 신속한 인상이 필요하다”(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사실 이성태 총재는 누구보다 인플레의 위험을 잘 알고 있다. ‘인플레 파이터’라고 할 정도로 강한 발언을 많이 해왔다. 중국이 최근 지급준비율을 올리며 출구전략의 시동을 건 것도 감안해야 한다.

이달 8일 금융통화위원회엔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이 참석했다. 그는 다음 달 11일 회의에도 갈 예정이다. 일부에선 ‘관치의 부활’을 염려한다. 뒤집어 보면 오히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여줄 기회다. 정부 측 인사의 참석에도 한은이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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