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서는 북·미] 해외전문가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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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0.12 북.미 공동성명은 우리에게뿐만아니라 미국.중국.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3차례 전문가 기고를 통해 미국.중국.일본의 시각에서 향후 한반도 정세변화를 살펴 본다.

빌 클린턴.김정일(金正日) 정상회담을 예고하고 있는 이번 북.미 공동성명은 워싱턴과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 일파만파(一波萬波)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한과 미국 등 모든 당사자들이 조심스런 낙관론을 견지하면서 앞에 놓인 일련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국내정치 차원에서 이번 결정으로 찬사와 비아냥을 동시에 받게 될 것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번 결정을 대통령이 추진해온 냉전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의 평양 방문은 동아시아 냉전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 그가 오래 전부터 계획한 베트남 방문에 일정을 추가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이다.

또한 평양 방문은 그가 지난 1994년 체결한 북.미 기본합의문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며 아랍.이스라엘 평화협상, 북아일랜드 분쟁 조정과 함께 그의 외교업적 리스트에 추가될 것이다.

동시에 클린턴의 이번 결정은 미국 내에서 상당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가 관계를 개선하려는 북한이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인 데다 미국과 한국을 미사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공산은 적다. 미국민은 그의 방북이 북한의 미사일과 핵개발 포기,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북한군 감축, 북한의 개혁.개방, 남북한 화해.협력 같은 구체적인 성과를 이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미 레임덕 상태에 있는 클린턴이 평양에서 차기 미국 대통령이 계승할 수 없는 약속을 김정일과 새롭게 합의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클린턴.김정일간의 정상회담은 동북아 외교무대를 상당히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첫째, 클린턴이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의 행동을 좀 더 합리적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한다면 지난 몇달간 동북아 외교무대에서 서성이던 미국은 다시 무대 중앙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달간 김정일은 장쩌민(江澤民)중국 주석.김대중(金大中)대통령.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일련의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미국은 빠졌다.

둘째,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의 조정자로서 워싱턴의 입지를 한층 강화시켜줄 것이다. 장차 이 정상회담은 남북한 화해가 이뤄진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베이징(北京)과 모스크바는 북.미 정상회담을 착잡한 심정으로 쳐다볼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반미(反美)구호를 외치던 북한이 마침내 미국과 화해하는 것은 장차 중국.러시아로부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지금 클린턴.김정일간의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예상하기에는 성급한 감이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반도가 다시 한번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워싱턴도 한.미 관계에서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국익에 상당히 영향을 받을 것이다.

워싱턴의 관점에서 보면 '조심스런 낙관'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은 두사람의 만남 자체가 아니라 정상회담 이후 전개될 일련의 흐름을 통해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고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베이츠 길 박사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센터 소장>

정리=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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