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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오범진의 아이티 구호 현장 ② 부상자 치료 급해 전염병 예방 엄두도 못 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지진 참사가 일어난 지 9일째인 21일(현지시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의 해외긴급구호대 2진이 아이티에 도착했다. 우리와 교대할 국립의료원의 응급의학 전문의 강태경 선생님 등 18명이다.

우리 1진 35명 중 의료진은 의사 3명, 간호사 4명 등 모두 7명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119구조대 소속이다. 아직 건물 더미 속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를 찾아내고 최대한 양호한 상태로 살려내는 게 주 임무였다. 반면 2진은 총 18명 중 13명이 의사·간호사·약사다. 이분들은 앞으로 2차 감염과 전염병 예방에도 힘쓰게 될 것이다.

지금은 외상 환자 진료하기도 벅차다. 그러나 지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수많은 부상자는 물론 건강한 사람들도 이대로 가다간 2차 감염과 전염병에 의해 또 다른 희생자가 될 게 뻔하다. 며칠 전 지진 피해 현장에서 만난 남성이 그랬다. 급한 외상 치료는 받았지만 사후 관리를 받지 못해 상처에 고름이 생기고 봉합 부위가 벌어져 있었다. 상처 부위를 소독해 주고 항생제를 투여해 줬다. 그러나 앞으로 상처를 봉합했던 실은 과연 어떻게 제거할지, 위생 관리를 꾸준히 하지 못해 치명적인 2차 감염을 일으키진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티 의료 통계에 따르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결핵과 에이즈가 가장 큰 사망 원인 중 하나다. 개인 위생이나 전염성 질환에 취약하다는 얘기다.

수인성 전염질환인 A형 간염이나 장티푸스 등도 많이 발생한다. 그건 오염된 음용수가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상수도시설이 충분치 않고 정화조시설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진 후 곳곳에서 시신들까지 썩어 가고 있으니 더 걱정이다.

물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우리 숙소도 상수가 부족해 매일 숙소 앞에 배달되는 1000L짜리 물탱크를 이용하고 있다. 40명 가까운 인원이 쓰자니 각자 커피 한 잔 정도의 물로 세수와 양치질 등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진료를 하는 병원은 부유한 동네 쪽에 있어 상수도시설은 갖추고 있지만, 화장실이 다른 층에 있어 환자가 바뀔 때마다 손 씻는 건 엄두도 못 낸다. 알코올로 대충 소독할 뿐이다.

사실 상수도를 통해 공급되는 물도 강물을 간단히 처리한 수준이다. 석회도 많아 현지인들조차 ‘마시면 안 된다’고 어려서부터 철저히 교육받는다고 했다. 빈곤층은 시냇물을 씻거나 빨래를 하는 생활용수로 직접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본 시냇물은 정말 더러웠다. 쓰레기와 오물을 그대로 시냇물에 버리기 때문에 악취가 진동했다. 그 오염된 강물 주변에 돼지와 닭 등의 가축이 사육되고 있었다.

식수는 대부분 사서 마신다. 지진 사태 후 빈곤층이 많은 지역에서는 대형 차량을 이용해 식수를 나눠 주는데 일부 가정에서는 빗물을 받아 숯을 넣어 식수로 이용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사 먹는 식수는 생산업체마다 수질이 다른데 상당수는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 같지 않았다. 값은 비교적 싼 편으로, 거리에서 파는 200㏄가량의 봉지 물은 우리나라 돈으로 70원 정도다. 하지만 워낙 더운 날씨라 내가 만난 중산층 주민의 말에 따르면 식수비가 한 달 생활비의 10~1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도 물을 사 먹은 이유를 들으니 또 한번 안타까웠다. 생활용수를 마시다간 십중팔구 병이 나는데 갈 만한 병원도 많지 않고 치료비가 너무 비싸 차라리 사 마신다는 것이다.

오범진 <서울아산병원 교수·응급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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