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대는 의료사업] 대형병원 줄줄이 부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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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기간의 파업으로 의료계와 관련산업이 제2의 IMF 위기를 맞고 있다. 병.의원의 적자누증과 제약산업 붕괴, 의학교육의 황폐화와 의료인력의 해외탈출 등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 가뜩이나 취약한 의료 인프라가 파업사태로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 병원 도산 위기=파업기간 중에도 진료를 계속한 중소 규모 병원이나 의원에 비해 전공의의 대거이탈로 진료공백을 빚은 종합병원은 점증하는 적자로 도산위기에 놓여 있다.

외래환자는 물론 입원환자가 급감해 수술스케줄 등이 절반 이상 취소됐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국공립병원은 부담이 덜한 편이지만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사립의대병원이나 민간종합병원은 특히 타격이 크다.

실제 재정이 취약한 지방 D대병원과 C대병원은 곧 부도위기에 몰릴 것이란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문제는 병원이 정상화되더라도 회복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 S병원 H교수는 "병원은 제품 생산공장과 달라 파업으로 인한 손실분을 철야근무 등으로 보충할 길이 없기 때문" 이라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재정이 튼튼한 초대형 병원 서울S의료원과 서울J병원조차 직원 월급을 삭감하고 차입경영을 하고 있다.

◇ 제약산업 붕괴=제약산업은 자금회전이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상 제약회사의 자금회수 기간은 6개월. 여기에다 의약분업으로 인한 40%정도의 약품 소비 감소로 경영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우수 제약업체가 연쇄도산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제약업계에 정부차원의 자금지원이 시급하다" 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 의학교육 부실=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파업현장에 합류하면서 6월 이후 4개월째 의대수업과 병원수련이 마비상태에 놓였다.

4일부터 의대생 대표들이 대학로에서 무기한 철야단식농성에 들어갔으며 전공의들도 대한병원협회에 사직서 수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의사되기를 포기한 상태. 본과 4학년 의대생들이 내년 초 의사시험을 포기함으로써 3천3백여명에 달하는 신규 의사인력의 배출에도 지장을 초래할 전망이다.

해마다 열리는 의사들의 추계학술대회도 전면 보류된 상황.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무기한 연기하거나 대한성형외과학회 등 추후 개최를 결정한 곳이 대부분.

◇ 의료인력 해외탈출=미국.캐나다 등 외국에서 취업을 원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내년 병역의무가 끝나는 공중보건의 K씨는 "의약분업 등 국내 의료환경에 환멸을 느껴 수련과정을 포기하는 공중보건의들이 많다" 며 "최근 동료들과 같이 미국의사국가시험(USMLE)을 보기 위해 스터디 그룹을 결성했다" 고 털어놨다.

교수사회도 동요하고 있다. 최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S의료원 B교수는 "현지에서 다시 전공의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될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북극 등 오지근무를 자원해서라도 외국에서 마음 편하게 의사생활을 할 생각" 이라고 털어놨다.

황세희 전문위원.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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