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밀로셰비치] '인종청소' 악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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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59.사진)는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증거가 됐다.

아름다운 유고 산하를 피로 물들였던 그는 13년 권좌에서 쫓겨나 언제 네덜란드 헤이그의 전범재판소로 압송될지 모르는 신세가 됐다. 미국은 그의 체포에 5백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어두고 있다.

베오그라드 인근 포자레바치에서 출생한 밀로셰비치는 매우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걸음마를 뗄 무렵 가출한 아버지는 그가 21세 되던 해에 자살했고, 10년 뒤엔 어머니도 자살했다.

그를 돌봐주던 삼촌도 권총으로 자살한 특이한 가계(家系)다.

가난하지만 공부를 잘 했던 학생 밀로셰비치는 공산당 지도자의 딸 미라 마르코비치를 중.고교 시절 만나 인생행로가 달라졌다.

대학 졸업 후 변호사가 된 그는 잠시 금융계에서 일했지만 공산당에 투신, 장인을 등에 업고 출세가도를 달렸다.

특히 그의 부인은 밀로셰비치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악명높다.

1987년 세르비아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자 코소보.보이보디나의 자치주 지위를 박탈하는 강압조치로 인기를 얻었고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공식 선출됐다.

91~95년 크로아티아.보스니아 등의 세르비아계를 지원하며 내전을 일으켰고 세르비아 공화국 헌법상 대통령 3선이 금지돼 있자 97년 몬테네그로 공화국과 신유고연방을 결성, 연방 대통령에 올랐다.

98년부터는 권력기반 유지를 위해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자극, 코소보에서 '인종청소' 를 단행해 1백70만명의 알바니아계 주민 중 85만명을 몰아냈다.

밀로셰비치가 선택할 길은 많지 않다. 그로선 해외망명이 최선이겠지만 받아줄 나라가 별로 없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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