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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복제 연구 황박사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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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장기 복제에 대한 연구를 그만둬야 할지,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체세포를 이용, 배아(胚芽)를 거쳐 간(幹)세포 복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가 시민단체.종교단체로부터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는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 그는 5일 경기도 광주군 퇴촌의 연구용 축사에서 요즘의 고민을 이렇게 털어놨다.

黃교수는 연구를 계속하자니 '배아 복제를 포함한 어떠한 인간복제 연구도 중단해야 한다' 는 여론의 압력이 거세지고, 그만두자니 미.일 등 선진국 과학자들은 법적인 뒷받침까지 받아가며 뜀박질하고 있는 현실이 그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지난 8월 치료 목적의 인간 배아 복제 연구를 허용했다.

배아복제는 장기가 손상된 환자들의 체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거부반응이 없고 유전형질이 1백% 똑같은 맞춤형 장기 복제를 할 수 있어 앞으로 가장 각광받을 생명공학분야 중의 하나로 꼽힌다.

예컨대 신장이식을 받아야 할 환자가 신장 기증자 없이 자신의 귓불이나 피부 세포만으로 자기에게 맞는 신장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니 이처럼 복음 같은 얘기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항상 윤리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혹시 이러다가 키메라 같은 정체불명의 동물이 생겨나고, 인간의 족보를 뒤흔드는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 윤리와 과학기술 연구 사이의 정서적인 틈이 크게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 틈이 지나치게 클 뿐 아니라 여론몰이가 아주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윤리.종교적인 비난만 있지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거나 생명복제에 대한 기준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만 탓할 일이 아니다. 종교적인 믿음이나 윤리적 측면에서 우리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영.미.일 등 선진국의 발빠른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재빠르게 생명복제 기준을 만들어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면서 과학자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 주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자들이 더 이상 숨어서 인간 배아복제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도록 하면서 생명공학 시대로 불리는 21세기의 주도권을 잡자는 전략이다.

인체 지놈 붐을 타고 올들어 정부와 민간 쪽에서 생명공학 육성 방안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학자를 신나게 하는 것' 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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