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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Top Woman] 4. 마르틴 오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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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세계의 절반’인 여성.그런데도 ‘소수자의 혜택’에 매달려 지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권력에 파고들어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해야한다는 여성들의 소망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과연 남녀가 동등한 권력을 누리는 세상이 올 것인가.

프랑스 사회당의 대표주자로 기염을 토하고 있는 마르틴 오브리 노동장관(50)에게 가능성을 탐색해봤다.

-지난해 파리에서 유럽공동체의 15개국 장관들이 참가했던‘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남성과 여성들’회의를 후원하셨지요.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권력을 나눌 수 있는가가 요점이었죠.성과가 있습니까.

“지난 1992년 아테네에서 열린 유럽정상회담에서 ‘의사결정과정에서 여성참여’를 논의한 데 이은 것으로 유럽 내에 ‘남녀 동등권’의 개념을 도입해서 정치·경제·사회 등 전분야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실질적인 남녀평등이 이뤄지도록 필요한 대책을 세우고 적극 지원하자고 결의했지요.

지난 5월 프랑스 국회를 통과한 ‘남녀 동등권’은 그 결과입니다.45년부터 여성들에게 피선거권이 있었는데도 아직도 여성의원이 하원은 11%,상원은 6%를 밑돕니다.

이런 불평등은 국민을 대신해 정치를 맡는 뜻을 왜곡하고 민주정치를 위협합니다.불행하게도 사회의식이나 정당의 변화가 없어 헌법을 개정하고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습니다.조스팽 총리는 ‘남성과 여성들은 선거로 임명되는 권한과 직책에 동등하게 참여한다’고 헌법을 개정했습니다.그에 따른 법안이죠.”

-법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부당한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내용입니다.이것은 공화정치에서의 보편주의,말하자면 소수에게 할당을 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여성들은 ‘소수자’가 아니라 인류의 반수라는 사실에 의한 것입니다.

남녀후보자의 동등권은 유럽 선거·지역선거·주민 2천명 이상의 시 선거에 해당됩니다.이를 지키지 않는 정당은 재정적 벌책을 받습니다.남녀의 차이가 2%이상 벌어지는 당에는 남녀간 차별율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율만큼 국가의 재정후원이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30%인 정당은 남녀차이(40%)의 절반인 20%의 재정지원이 줄게 됩니다.2001년 3월에 있을 시의원 선거때부터 적용되죠.정부는 행정조직의 책임자 고용에도 이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프랑스에선 법적으로는 남녀가 이제 확실히 평등해졌지요.그러나 실질적으론 아직 멀었습니다.저는 정치분야에 남녀동등권이 도입되면 의식도 진보하리라 생각합니다.

정치분야에서 여성이 성공을 하면 사회전체의 귀감이 됩니다.정치세계의 여성화는 민주주의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여성들이 의사결정권에 참여하기 위해선 항상 남성보다도 더 투쟁하고 노력해야합니다.남녀평등은 각자의 책임감에 달려 있습니다.각자 정치·업무·인사의 책임을 지고,일상생활에서 평등의 원칙을 존중하므로써 이뤄집니다.”

-그렇지만 여성이 권력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은데요.

“의식의 변혁이 필요합니다.그것은 교육과정에서 시작해야 해요.어릴 때부터 여자아이에게‘이것은 전통적인 여자의 직업’이란 틀에 박힌 사고를 심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남성과 여성의 차별대우가 없고 ‘세상은 남자가 지배한다’는 식의 사고에 강요당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이것이 의사결정 참여에 남녀가 동등하게 참가할 수 있는 태도와 인식을 만드는 토양입니다.”

-권좌에 오른 여성들이 성공하는데 필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용기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다음으로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불행하게도 여성들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해‘내가 힘든 정치의 세계를 견디어 낼 수 있을까’하고 자주 질문합니다.그러나 이 일을 맡을 능력이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남성은 적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꺼린다고 알고 있습니다만,한가지만 묻죠.남성들의 세계라고 여기던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버지의 영향인가요.

“제 이야기는 하기 싫은데‥.저는 불평등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것,개인주의 는 참지 못했어요.제가 사회정의와 연대감 형성을 위해 매일 투쟁하는 것은 아마도 정치참여의식이 강했던 아버지와 이웃돕기에 열심이었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죠.

고교 시절 노동조합위원장·기업경영대표들이 집에 와 당시 총리의 사회문제고문이었던 아버지와 토론하는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한 점은 따로 아버지의 설명을 듣곤 했죠.행정대학원졸업 후 남들이 문제가 너무 많다고 들어가길 꺼리는 노동부를 택한 것도 바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노동부에서 일하면서 정치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정치를 하려면 전문지식뿐 아니라 몇십년 앞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무료의료진찰제공과 주 35시간 근로제 도입은 큰 업적으로 꼽힙니다.이들 정책은 처음에 반발이 거셌지만 시행 후 성공적으로 평가받았죠.정책추진과정에서 반발세력을 잠재운 비결이 무엇인가요.

“특히 35시간 근로제를 둘러싸고 이념적인 토론이 신랄하게 벌어졌었지요.제 업무추진 스타일은 실질적이기 때문에 토론에 맞서는 대신 각 기업마다 경영자와 고용자가 사회문제를 협상해 근로시간을 줄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도록 권고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35시간 근로제가 실업률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며(23만명이 고용됐지요)더 나은 삶을 위한 사회의 이로운 정책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현재 사기업의 절반 이상이 35시간 근로제를 채택했습니다.저소득층 무료의료진찰제의 도입으로 6백만명이 넘는 저소득층 국민이 다른 소득층과 동등한 의료혜택을 받게 됐죠.제가 한 일 중에 이 일이 제일 자랑스러워요.”

-주35시간 근로제가 여성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나요?

“근로시간을 줄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실업자를 구제하고,기업의 조직을 현대화하며 봉급자의 생활의 질을 향상하자는 거죠.실업자수는 줄었고 기업들은 변화에 따른 효과적인 장비 사용 등으로 능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봉급자들은 85% 이상이 35시간제에 만족한다는 반응이죠.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직업에서의 성공이냐 아이들의 교육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힘든 상태에 놓여있지요.여성들은 엄마가 되는 동시에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원합니다.

노동시간의 감소는 한 해결책이죠.직장과 가정생활의 조화를 꾀할 수 있고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취업여성은 집안일도 해야 해 노동시간이 남성의 2배나 되죠.이 제도로 여성은 휴식시간을 얻고 남성은 남은 시간을 집안일에 할애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동등권’은 정치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개선으로 이어져야 참다운 의미가 있습니다.”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늘어나면서 정치문화도 바뀐듯합니다만.

“장을 보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듯 정치문제에 있어서도 여성은 생활과 현실에 밀착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안합니다.남성들보다 직설적으로 대화하죠.지루하고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지 않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갑니다.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지요.

권력에 대한 욕망에 남성들보다 덜 민감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효과적인 시민정치를 끌어나간다고 확신합니다.”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차세대 정치인으로 꼽히고 계시지요.파리마치 최근호는 조스팽총리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경우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후보1위로 지목하더군요.여성이란 덕도 보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프랑스인은 각자의 행동능력을 보고 판단합니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매일 투쟁하는 저의 의지를 인정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7일에 노동부장관직을 스스로 물러난다고 들었습니다.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죠.앞으로 계획을 들려주세요.

“노동부에 있으면서 사회당이 선거공약으로 내놓은 것 중 제게 맡겨진 문제들을 많이 개선했습니다.저는 릴 도시의 시장직에 후보로 나설 예정입니다.

릴이란 도시는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전망도 밝습니다.직조공장·철강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를 비롯해 약80%의 주민이 최저임금으로 살아가고 있지요.장관실을 떠나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 - 메일 인터뷰 =홍은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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