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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전투가 영화 속 일이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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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아바타에는 용병과 로봇전이라는 이색 소재가 등장한다. 언뜻 봐선 먼 미래나 영화 속 얘기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선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실제로 두 전쟁터에서 민간 용병의 수는 모든 연합국 정규군의 병력을 능가한다. 2003년 이라크전이 시작될 때 단 1대도 없던 지상 로봇은 1만2000대 이상으로 늘었다. 미군은 2012년까지 인간 병사와 로봇이 합동작전을 벌이는 실전부대를 창설한다는 계획이다.

전쟁이 달라졌다. 국적이나 충성심, 도덕적 명분과는 거리가 먼 민간 용병들이 정규군을 대신해 총을 들고 있다. 로봇은 이제 전쟁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주도한다.

지난해 말 아프가니스탄 미 중앙정보국(CIA) 지부에선 자살폭탄 테러사건으로 7명의 CIA 요원이 사망했다. CIA 사상 최대 참변 중 하나였다.

1983년 레바논 미 대사관 자살폭탄 테러로 CIA 요원 8명이 사망한 사건 다음으로 하루에 가장 많은 요원이 숨졌다. AP통신 등 미 언론은 CIA 요원 7명 중 제레미 와이즈(35)와 데인 파레시(46)가 민간 전쟁대행회사인 블랙워터 직원이라고 보도했다. 군에서 특수작전에 참여했던 두 사람은 퇴역해 블랙워터 직원이 됐다.

CIA 지부는 무인공격기 폭격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었다. 알카에다는 “미국의 무인기 공습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보복공격을 위해서도 로봇인 무인전투기가 동원됐다. 그동안 여섯 차례 폭격으로 최소한 20명이 사망했다.

2003년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만 해도 지상엔 작전 수행용 로봇이 한 대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엔 1만2000대 이상의 지상 로봇이 배치됐고, 공중엔 7000여 대의 무인기가 떠 있다. 무인전투기 프레데터가 대표적이다. 고공 정찰기 리퍼도 있다.

프레데터가 출격하지 못하면 작전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길이 약 15m인 프레데터는 공중에서 24시간 머무를 수 있는 로봇이다. 대전차 미사일을 싣고 목표물을 정밀 타격한다. 데이비드 뎁툴라 공군 중장은 프레데터가 발사한 미사일 600여 기 중 95%가 목표물에 명중했다고 밝혔다. 프레데터는 2006년 알카에다 지도자 아부 알자르카위를 사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 20명 중 절반 이상이 무인기 폭격으로 숨졌다. 이 같은 활약으로 무인전투기의 이용은 더 늘어날 게 틀림없다. 실제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1대 만드는 데 5억 달러(약 6200억원) 이상 투입된 F-35가 조종사가 탑승하는 마지막 전투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들이 배낭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로봇도 있다. 지상에선 급조폭발물(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s) 제거용 로봇도 있다. 로봇 청소기로 유명한 아이로봇사가 개발한 팩봇은 카메라가 장착된 긴 팔로 정찰 및 위험물 제거에 나선다. 마르스는 팩봇에 전자동 기관총을 매달았다.

군사전문가들은 2015년께엔 인류가 벌이는 전쟁의 절반이 무인전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로봇 정찰원이 로봇 전투원에 정보를 전송하고 전장에선 로봇 간 교전이 이뤄지는 영화 같은 장면이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민간 용병들의 광범위한 확산은 여러 전장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문제작으로 꼽히는 『전쟁대행주식회사』의 저자이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인 피터 싱어 박사는 “이라크엔 19만 명, 아프간엔 10만 명의 용병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 국가 등장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던 용병이 새롭게 각광받게 된 데는 9·11테러의 역할이 컸다.

9·11테러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모든 군사적 업무를 대행하는 군사기업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용병은 언제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있는 전사다. 편리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면서 잘못도 아웃소싱할 수 있다. 군인들의 군사력 남용은 국제문제를 일으키지만 용병은 해고하면 그만이다. 문제가 되면 정부는 “그런 권한을 허용한 적이 없다”고 말한 뒤 계약을 취소하면 되기 때문이다.

워싱턴=최상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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