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 핵발전소 폐지공약 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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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이 난처한 선거공약을 결국 정치력으로 풀어냈다. 자신이 공약으로 내세운 핵발전소 건설 중지를 사실상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 2일 천저난(陳哲男)총통 비서실장은 "제4핵발전소 건설문제는 행정원의 판단을 따를 것" 이라고 발표했다. 행정원은 핵발전소 건설을 일관되게 요구해와 핵발전소 건설이 재개되게 됐다.

자신의 선거공약이자 대만 국민 60% 이상이 지지하고 있는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陳총통이 포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총통이 된 뒤 야당 총재 시절의 상황인식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총통 취임 후 군부와 국가지도부는 陳총통에게 "핵발전이 없을 경우 대만의 국가안보가 지극히 취약해진다" 며 핵발전소 건설 중단 공약을 재고할 것을 건의했다.

유사시 중국에 의해 대만해협이 봉쇄될 경우 에너지 공급원이 끊겨 전쟁은커녕 산업이고 뭐고 한달도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경제인들도 "핵발전이 포기될 경우 염가.양질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워져 외국 투자가들이 떠날 것" 이라며 재고를 요청했다.

하지만 지난 9월 30일 대만 경제부는 陳총통의 선거공약 실현을 위해 '핵발전소 폐지 건의안' 을 발표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안보 취약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마구잡이식으로 팔자 주문을 내놔 주가가 무려 2백47포인트나 급락했다. 2일엔 1백61포인트나 추가 하락했다.

선거공약만을 고집할 상황이 아님을 시장이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총 1천1백억 신타이비(新臺幣.약 4조3천억원)가 소요되는 제4핵발전소는 공정이 이미 32% 이상 진전돼 그동안 4백50억 신타이비 이상이 투입됐다.

만약 지금 당장 공사를 중단한다면 손실금은 1천억 신타이비를 넘어설 것이며 대만 건설경기도 침체될 전망이다. 아무리 대만 경제가 탄탄하다지만 陳총통으로서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심사숙고 끝에 결국 陳총통은 '탕페이(唐飛)행정원장 카드' 를 빼들었다.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아온 唐원장의 사표가 3일 전격 수리된 것도 정치적 카드라는 견해가 있다.

어차피 건강 때문에 사임해야 할 입장이라면 지금 그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행정원장까지 희생시켜가면서 공약을 지키기 위해 고심했다" 는 점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려 했다는 얘기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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