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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학생·회사원 마약 중독자 급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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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의 명문 여대생인 K양(22).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인사의 자녀다. 그런 그녀의 인생이 나락에 떨어진 건 지난해 초 신촌의 한 '록 카페' 에 가면서부터다.

부킹으로 만난 유학생 남자의 권유로 '엑스터시' 란 이름의 붉은색 알약을 먹었던 것. 허공을 둥둥뜨는 듯한 황홀함도 잠시, 1개월 후엔 약을 먹지 않으면 온 몸이 가려운 참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다.

계속된 발작. 그녀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알고 방 안에 방음장치를 하고 가두는 등 갖은 수를 썼지만 소용 없었다. K양은 최근 도미(渡美),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전직 대기업 중간간부를 지낸 40대 후반의 L씨. 직장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어쩌다 손을 댄 게 히로뽕 중독자가 됐다.

가정도 파괴됐고, 회사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재 동유럽에 머물고 있지만, 최근 한 지인에게 "히로뽕을 여기서도 시작하게 됐다" 며 눈물로 호소해 왔다.

이처럼 마약은 일반인들 사이로 깊이 파고들고 있다. 수사기관에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과거 연예계나 유흥업소.윤락가 등 특정 부문에 집중되던 양상과는 다르다. 학생.회사원.자영업자, 심지어 농촌지역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 해외여행 자유화, 인터넷의 보급 등이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유학생 사이에는 방학을 이용한 '마약 배달 아르바이트' 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4~5년 전만 해도 1회분(0.03g)에 35만원까지 치솟던 히로뽕 가격이 지난해 말부터 7만~8만원으로 떨어지는 등 가격 하락도 마약 대중화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적발된 마약 사범은 총 1만5백89명. 1년 만에 26.8% 늘어났다.

1995년 5천4백18명에 비하면 적발사범이 4년 사이 두배로 뛰어올랐다. 올 상반기도 벌써 5천19명이 적발됐다.

이중 회사원은 95년 1백70명에서 3백81명, 주부는 53명에서 87명, 학생은 32명에서 45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95년 1천78명(19.9%)에서 지난해 2천3백26명(22.0%)으로 크게 늘고 있는 게 뚜렷한 추세다. 왕성하게 일해야 할 20~40대가 전체 마약 사범의 87.2%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마약 전과자들의 교화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마약선교사 이 데보라(60.여)씨는 "일부 상류층 사이에는 동남아 원정 마약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며 "상담자 중에는 '혼자 만의 환각파티' 를 즐기는 의사들도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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