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손이 미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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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제3보(23~34)=우상의 정석이 26에서 일단락됐다. 흑이 한 수 더 둔다면 A로 뻗는 수. 그러나 좌상이 납작하게 눌린 상황에서 A로 둘 바보는 없다. 흑▲는 위치가 이상하지만 당분간 이대로 둘 수밖에 없다.

박영훈 9단이 27로 손뺀 곳을 응징하자 쿵제 9단은 28로 벌려 계속 빠르게 움직인다. 박영훈 득의의 ‘실리 전법’을 쿵제가 거꾸로 사용하는 모습이다. 29로 하나 걸쳐 놓고 31로 잡았다. 31은 매우 큰 수. 이것으로 흑도 백의 실리에 대응할 만한 진지를 구축했다(31로 ‘참고도1’ 흑1로 받는 것은 백2~6까지의 상용수법이 안성맞춤이 된다). 초반에 가볍게 삐걱거리긴 했으나 흑도 안정을 찾은 모습이다. 한데 쿵제가 32로 붙여왔을 때 박영훈은 다시 갈등에 빠져든다. B로 받으면 C로 갈라칠 것이다. 따라서 ‘참고도2’ 흑1쯤 두고 백이 귀를 안정시킬 때 3에 두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박영훈의 손이 갑자기 33까지 달려가버렸다.

“미쳤다. 가까이 가선 안 되는 곳을 가버렸다.” 박영훈 9단은 국후 33을 크게 후회하며 고개를 저었다. 빗나간 33으로 인해 박영훈은 그만 호랑이 등에 타고 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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