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산안의 네가지 논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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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1년도 정부 예산안이 발표됐다. 일반회계와 재정융자 특별회계를 합한 재정규모가 올해 추경예산안 대비 6.3% 늘어난 1백1조원이라고 한다.

내년도 예산안을 보고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매년 이맘 때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예산편성 관련 정책논의가 보다 공개적으로 실효성 있게 진행돼 국회의 심의과정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가지 논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2003년까지 재정균형을 달성한다는 재정 건전화의 목표 문제다.

물론 재정 건전화를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나 반드시 2003년이라는 시한에 얽매일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우리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공공투자를 삭감하면서 2003년에 재정균형을 달성한다면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

재정 건전화의 기초적인 토양은 경제기반의 건실화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공공투자는 지속해야 한다.

내년도 예산에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증가율이 0.1%에 불과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걱정되는 대목이다. IMF 위기 이전에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의 하나가 고물류비용의 문제였는데, 이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둘째, 내년도 예산에서 20.7% 수준으로 나타난 조세부담률 문제다. 정부 예산안이 발표될 때 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내용이 국민 1인당 세부담과 조세부담률 수준으로, 일반적으로 이것이 높을수록 비판이 커지게 된다.

그러나 적정한 조세수입 없이 필요한 공공투자를 하면서, 그리고 구조조정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필자는 지금과 같은 재정적자 시대의 올바른 정책방향은 음성탈루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등 세정.세제의 개혁을 통해 지금까지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 왔던 계층의 추가적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조세부담률을 제고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내년도에 조세부담률 수준을 예년에 비해 다소 상향 조정한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정부는 이러한 불가피성을 떳떳이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놀라운 사실은 올해의 조세부담률 수준도 당초 예산상의 수치보다 2% 포인트나 높은 20.7%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경상성장률 전망에 오차가 있다고 해도 GDP에 대한 비율로 표시되는 조세부담률에 이러한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이는 기본적인 정책의 신뢰성 문제를 야기한다.

셋째, 내년도 예산에서도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인건비 예산 문제다. 정부는 2004년까지 공무원 보수 수준을 중견기업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내년에도 7~8% 수준의 처우개선을 예산에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 인력규모의 적정한 조정 없이 처우개선을 도모할 경우 재정운영에 상당한 압박요인이 된다.

공무원 처우 문제는 민간부문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났던 대규모 실업이나 임금하락과 비교해 평가해야 한다.

공공부문은 아마도 상대적으로는 구조조정의 고통이 작았던 부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공무원 인력규모 축소와 인사, 보수 시스템의 개선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의 일률적인 처우개선과 민간부문에 대해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어떻게 양립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남북협력기금에 5천억원을 출연하는 문제다. 남북간 교류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재정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시대적인 요구다.

문제는 재정지원의 방법이다.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사업 내용과 추진방법.시기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기초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남북협력기금에서 사업을 수행할 경우 현행 제도아래에서는 행정부만의 정책결정으로 모든 사업을 수행할 수 있으므로 이 사업은 기금이 아닌 예산 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상과 같은 논점들이 내년도 예산안의 심의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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