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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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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아이티는 신의 저주를 받았다!” 최악의 지진으로 수없는 목숨이 스러진 비극을 두고 나온 소리다. 미국 기독교 보수파의 거물 팻 로버트슨 목사가 몹쓸 말의 장본인이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혹독한 식민지배에 시달리던 아이티 사람들이 자유의 대가로 악마를 섬긴다는 계약을 맺었단다. 그 결과 독립은 얻었지만 신의 노여움 탓에 재앙이 잇따라 오늘날 생지옥을 겪게 됐다는 거다.

얼토당토않은 그의 망언엔 부두교(voodoo)에 대한 서구인들의 오랜 편견이 숨어 있다. 콜럼버스가 아이티를 처음 ‘발견’한 이래 숱한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왔다. 그들과 함께 하나의 신과 ‘르와’라 일컫는 여러 정령(精靈)을 숭배하는 토착신앙도 건너왔다.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요하는 백인들에 맞서 이들 흑인 노예는 자기들의 신을 하나님으로, 정령은 성자(聖者)들로 치환해 섬기는 눈속임을 이어갔다. 이렇듯 아프리카 고유 종교와 가톨릭이 뒤섞여 탄생한 퓨전 신앙이 바로 부두교다.

부두교는 통치자들의 압제에 저항하는 흑인 노예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로 작용했다. 문제의 악마 계약설도 1791년 8월 일단의 노예들이 모성을 상징하는 르와에게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부두교 의식을 거행하며 독립 투쟁을 맹세한 게 와전된 것이다. 부두교에 사악한 이미지가 덧씌워진 건 이후 악용한 사람들 탓이 크다. 재임 중 수만 명을 처형한 악명 높은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대표적이다. 국민들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늘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마치 자신이 죽음의 르와인 ‘배론 삼디’인 양 행세했다고 한다.

아이티의 불행은 스페인과 프랑스·미국으로 이어진 외세의 침탈, 그리고 그에 기인한 정치·경제 불안이 근본 원인이다. 이전에 태풍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연이은 것도 지나친 벌목으로 숲이 황폐해진 데 따른 것이란 지적이 많다. 그런 인재(人災)에 천재(天災)까지 겹쳐 도저히 혼자 감당 못하니 국제사회가 한마음으로 도우러 나선 것이다. 물론 아이티의 크나큰 상처가 물질적 도움만으로 아물 순 없을 터다. 바로 종교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그런데 기도를 올리긴커녕 악담을 퍼붓는 종교인이 있으니 차라리 “가능한 최상의 세계는 종교가 없는 세계”(존 애덤스 전 미국 대통령)란 말까지 나온 게 아닌가.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