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 왜 강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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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활을 잘 쏘고 싶으면 한국으로 오라. "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미국 양궁 대표선발전에 나섰던 세계적인 여배우 지나 데이비스(43)를 만난 '신궁' 이은경(한국토지공사)은 이렇게 권유했다.

한국인은 동이(東夷)민족(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인데다 바느질과 젓가락 문화 때문에 활을 잘 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남녀 모두 세계 정상으로 군림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우선 한국 양궁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경기도 구리에 위치한 LG 훈련장에서의 한강변 바람 적응 훈련은 1984년 LA올림픽 때부터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훈련 비결이다.

시드니 출발을 앞두고 지난달 27일 잠실 야구장에서 모의 실전경기를 가진 것도 색다른 훈련 방법이다. 대형 전광판과 관중의 소음 속에서 대표 선수들은 집중력과 대담성을 길렀다.

양궁협회는 또 현지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시드니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미리 분석, 철저히 대비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로 비유될 정도로 혹독한 대표 선발전도 한국 양궁의 경쟁력을 제고시킨다.

대표선수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7차례 선발전에서 1천5백여발을 쏘는 8개월간의 대장정을 치르기 때문에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불운으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국가대표가 되더라도 대회마다 성적순으로 대표팀을 개편하기 때문에 연습을 게을리하면 후배들에게 태극 마크를 빼앗기게 된다.

여자 세계랭킹 1위 이은경이 시드니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은 한국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궁협회는 또 독특한 지도자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상비군 선수를 남녀 코치 8명에게 배정해 이들중 대표선수를 많이 배출한 코치가 올림픽 코치를 맡는다.

게다가 지금까지 1백20억원을 투자한 대한양궁협회(회장 유홍종)의 전폭적인 지원도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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