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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치료, 오감으로 느끼다 보면, 몸과 마음이 달라지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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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치료는 푸른 생명을 매개로 한다. 식물이 생장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내는 에너지를 치료에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예치료는 심신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과 소아청소년, 회복 단계의 환자, 정년퇴직자,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과 주부 등이 모두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어린이엔 집중력과 사회성 길러줘

어린이를 위한 원예치료는 종자 파종부터 수경재배·잔디인형 만들기 등 호기심을 자극해 집중력과 탐구심, 그리고 사회성을 기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어릴 때부터 직접 채소를 기르고, 수확하는 과정을 통해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의 편식을 바로잡을 수 있다. 또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개선하기도 한다.

장애인 복지기관인 다원주간보호센터(광주광역시 소재) 신상옥 원예치료사는 지난해 다니엘영재사관학교에 입학한 어린이 48명에게 방과 후 원예치료를 실시했다. 그 결과 어린이의 발표력이 크게 향상됐다. 특히 공동작품을 만들며 친구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협동심이 생겼다(호남대 대학원 학위논문).

조문경 박사는 “원예치료는 약물 또는 인지치료를 받는 ADHD 환자에게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안감을 줄여 ,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교 교실에 실내정원을 설치하면 학생들의 주의력 집중이 높아지고, 집단 괴롭힘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소개했다.

정서·정신장애 환자에게 삶의 의지를

물컵 안에 솜이나 키친타올을 깔고 씨앗을 뿌려 새싹채소나 미나리·양파 등을 키울 수 있다. [중앙포토]

원예치료 프로그램에는 식물을 키우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치료 대상에 따라 식물을 일부러 죽이기도 한다. 예컨대 알코올 중독자에겐 날마다 식물에 물을 많이 주도록 한다. 식물의 뿌리가 썩어 누렇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도록 해 과음의 경각심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알코올 중독 전문 다사랑병원 이종섭 원장은 “알코올 중독 환자는 충동적이고 의존성이 강한데 원예치료에는 인내심을 기르고 자신을 제어할 수 있도록 돕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원예치료사가 치료 대상자와 끊임없이 대화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정신지체 장애인은 주의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산만해 학업성취도가 낮다. 원예치료사는 이들에게 식물을 심고 가꾸는 동안 식물의 이름과 색깔 등을 반복해 말하도록 한다. 가령 ‘민들레는 노란색, 봄에 피는 꽃’ 하는 식이다. 이렇게 식물 재배법을 배우고, 식물의 잎·줄기·뿌리 등을 관찰하면서 숫자 개념과 어휘력·판단력을 발달시킨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외로움과 좌절감을 잘 느낀다. 이들에게 원예치료를 하면 자아존중감과 인간관계가 호전될 수 있다.

치매·뇌졸중 환자에겐 재활의 기회

치료효과가 가장 뛰어난 대상자는 노인이다. 신체가 노화하면 근력과 평형감각이 떨어진다. 이때 원예활동으로 땅을 일구거나 풀 뽑기 작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전신운동이 된다. 허리를 펼 수 있는 각도가 넓어지고, 악력 등 신체기능이 좋아진다.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노인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상실하고 우울증을 경험한다. 원예치료는 재미있는 소일거리인 동시에 오이·상추·콩 등을 직접 길러먹어 경제적 도움을 준다. 동료와 가족 간 대화의 주제가 돼 사회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만든 작품을 전시하거나 수확한 꽃과 열매를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는다. 평생 한 번 정도는 식물을 길러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옛 기억을 회상하며 삶을 돌아볼 수도 있다.

치매 환자의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조 박사는 “노인 치매 환자가 처음 병원에 입원하면 가족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원예치료는 어르신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누그러뜨려 치료 참여를 높인다”고 말했다.

뇌졸중 환자의 재활에도 활용된다. 편마비가 있는 뇌졸중 환자에겐 식물 옮겨심기, 가지치기 등 간단한 동작을 부여해 뇌와 손의 능력을 길러준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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