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다가오니 … 밀양시 공무원들, 충성 그리고 배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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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7일 오후 경남 밀양시 정보통신계 사무실. 정보통신 담당 주사 허모(47·6급)씨는 내부 전산망을 통해 엄용수 시장의 컴퓨터 e-메일함을 열었다.

시장의 ID와 비밀번호가 필요하고 방화벽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15년째 밀양시의 전산 업무를 맡아 온 데다 시장을 포함한 전 직원의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는 관리자 권한까지 가진 그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엄 시장의 e-메일함에는 “승진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방선거에서 적극 지지하겠습니다”는 내용이 적힌 시청 공무원 A씨의 e-메일 등이 들어 있었다. 허씨는 선거법상 문제가 될 만한 e-메일을 골라 출력했다. 퇴근 후 6월 2일의 지방선거에 시장 후보로 출마할 인사의 사무실에 넘겼다.

밀양시 관계자는 “허씨가 이런 방식으로 넘긴 e-메일은 10건이 넘고, 시장을 비롯한 간부 6~7명의 e-메일을 해킹해 온 지는 1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밀양시선관위에 익명의 전화 제보가 걸려 왔다. “밀양시청 A씨가 승진 보답으로 시장을 지지하겠다고 한 문건을 확보했는데 선거법 위반 아닙니까?”

밀양시 선관위는 A씨 등 6~7명을 불러 제보 내용을 들이대며 사실 여부를 캐물었다. A씨 등은 조사받고 나온 뒤 곧바로 엄 시장을 만났다고 한다. 시장에게 은밀하게 보낸 e-메일 내용을 선관위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밀양 경찰서 관계자는 “e-메일을 해킹해 유출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 제49조(비밀 등의 보호) 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제보 내용을 확인 중인 밀양시선관위는 “공직선거법 60조(공무원의 선거 관여 금지)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시장에게 단순한 지지 의사만 밝힌 수준에 그쳤는지, 지지도 조사 등 구체적으로 선거에 도움을 줄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는지를 가려내 사법 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 시장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탈당, 무소속으로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한나라당 경남도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다.

밀양=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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