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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도서관 40곳 점자단말기 보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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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982년 맹학교 고교 1학년이었던 시각장애인 임경억(46)씨는 주말마다 방안에 틀어박혀 점자로 번역된 ‘성문종합영어’를 손으로 옮겨 적었다. 친구에게 빌려온 책이었다. 하루에 옮겨 적을 수 있는 양은 20장 남짓. 점자를 읽은 뒤 점자기계로 일일이 찍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점자책은 가격이 비싸 이렇게 직접 만드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80년대 후반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한 임씨는 “그때는 책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는 책은 자원봉사자가 낭독해 만든 ‘녹음도서’와 타자기로 직접 쳐 만든 점자책이 전부였다고 한다. 녹음도서와 점자책을 만드는 곳도 서울 시내에 각각 한 곳뿐이었다.

그러나 현재 전국에는 40개의 점자도서관이 있다. 40년 전 한 곳에 불과했지만 매년 한 곳꼴로 늘어났다. 시각장애인들은 이곳에서 녹음도서와 점자책뿐 아니라 일반적인 책의 문서파일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집에서도 간단히 내려받을 수 있다. 문서파일이 있으면 이를 음성파일로 전환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소리로 들을 수 있다. 또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점자로도 읽을 수 있다.

점자정보단말기의 가격도 낮아졌다. 10년 전 국내 업체가 단말기를 생산하면서부터다. 과거 수입 단말기의 절반 수준인 500만원대로 떨어졌다. 정부의 지원도 많아졌다. 2003년부터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시각장애인에게 단말기 가격의 80%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보급률이 꾸준히 늘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교육열과 정부의 지원, 정보기술(IT) 세 가지가 만나 김현아씨 같은 성공 신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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