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지방 분해하는 유산균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4면

성인 남녀의 간 등 장기에 붙어 있는 체지방. 청소년들에겐 얼굴 여기저기 튀어 오르는 여드름처럼 여간 고민거리가 아니다. 이에 유산균이 해결사로 등장했다.

‘유산균 박사’로 불리는 서울여대 이연희(생물학·사진) 교수는 유산균인 락토바실러스 람노서스(PL60, 이하 락토바실러스)가 체지방을 줄여 주고, 여드름 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산균 음료를 먹으면 다이어트가 되고, 얼굴에 바르면 여드름이 줄어드는 길을 열었다. 이 교수는 위암의 원인 균으로 지목된 헬리코박터균을 잡는 유산균을 발견해 상업화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 유산균은 사람의 장에서 체지방을 줄여주는 물질인 공액리놀레산(CLA:Conjugated Linoleic Acid)을 만들어낸다. 그동안 사람의 장에서 공액리놀레산을 만드는 미생물은 발견되지 않았었다. 시판 공액리놀레산은 홍화씨에 많이 들어 있는 리놀레산을 발효시키거나 화학 구조를 바꿔 만든다. 이렇게 만드는 공액리놀레산은 비싸고 공정이 유산균 배양보다 복잡했다. 그러나 사람의 장내에서 공액리놀레산을 생산하는 유산균이 발견됨에 따라 유산균 음료를 먹는 것만으로 체지방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험 과정은 이렇다. 시판 공액리놀레산을 먹은 뒤와 락토바실러스를 먹은 뒤 각각 혈중 공액리놀레산의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시판 공액리놀레산을 먹었을 때는 혈중 농도가 올라 간 뒤 서서히 줄었다. 그러나 락토바실러스를 먹었을 때는 한번 올라간 혈중 농도가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이는 락토바실러스가 체내에서 계속 공액리놀레산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리놀레산은 유산균이 공액리놀레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로, 고추 등 일반 음식에 많이 들어 있다. 굳이 리놀레산을 별도로 섭취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락토바실러스(PL60) 유산균의 전자현미경 사진. 이를 먹기만 해도 체지방이 감소한다. 가운데 사진은 고지방식만을 먹인 쥐로 고지방식과 유산균을 함께 먹인 쥐(오른쪽)보다 내장 지방이 훨씬 많다.

이에 앞서 동물실험에서는 락토바실러스를 먹인 실험 쥐의 경우 잘 먹여도 살이 많이 찌지 않고, 지방간도 현저히 개선됐다. 실험은 세 무리로 나눠 했다. 하나는 정상 사료를, 또 하나는 고지방식만을, 나머지 하나는 고지방식에 락토바실러스를 섞어 8주간 먹였다. 그 결과 정상 식단을 먹은 쥐들은 몸무게가 평균 25.3g이 된 반면 고지방식만 먹인 무리는 37g, 고지방식에 락토바실러스를 함께 먹은 무리는 29.7g이었다. 이는 유산균을 함께 먹으면 아무리 잘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 교수는 “역으로 정상 식단을 들면서 락토바실러스를 함께 먹으면 그만큼 체지방이 빠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실험 쥐를 해부한 결과 유산균을 먹은 쥐와 그렇지 않은 쥐의 내장과 간의 지방의 양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유산균의 장점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인체에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락토바실러스가 여드름 균을 부작용 없이 죽이는 것도 확인됐다. 이 교수는 “락토바실러스를 저녁에 얼굴에 바른 뒤 아침에 보면 그때까지도 살아 있었다. 이를 화장품 등에 섞어 바르면 여드름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여드름에 약을 바르거나 침으로 터뜨려 치료하는 방법을 썼으나 너무 비싸고 번거로웠다. 이 교수는 당장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락토바실러스에 대한 특허를 한국과 미국·유럽 등 8개국에 출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