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재선 의원들 지도부 압력에 '백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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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공이 많아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민주당 金泰弘의원)

"추석 전에 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 (한나라당 金元雄의원)

정국 정상화를 촉구하는 여야 초.재선 의원들의 공동성명서 발표다짐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여야 지도부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초 이들은 성명서에 "장외투쟁 중단, 한빛은행 대출사건에 대한 특검제 도입 등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길 것" 이라고 예고했다.

참여의원 20명의 명단과 6개항의 합의내용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14일 "최종 문안 손질을 하겠다" 며 모여서는 "성명서를 내지 말자" 고 결론을 내렸다.

민주당 김태홍 의원은 "당 조직처럼 꽉 짜여진 모임이 아니다보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돼 국민에게 죄송하다" 며 "순전히 타이밍이 문제가 됐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金의원의 해명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민주당 이호웅(李浩雄)의원은 "충정과 순수성은 이해하지만 상대방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란 지도부의 만류가 있었다" 고 털어놓았다.

민주당의 경우 한빛은행 사건 특검제 도입을 성명서에 포함시키는데 대해 동료의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 의원은 소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도 "우리당 지도부로부터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에 대한 원인무효와 사과는 당론이니 흐트리지 말아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고 밝혔다.

당초 성명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던 '여야 지도부 총사퇴' 주장을 둘러싼 여야간의 신경전도 의원들에게 부담이 됐다.

한나라당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은 "민주당 3역을 사퇴시키려는 여권 내부 갈등에 우리당 의원들이 놀아나고 있다" 고 주장했고, 그 배후로 지목된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펄쩍 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초.재선 의원들의 성명불발을 당리(黨利)의 장벽을 넘기 어려웠던 데다 의원들도 눈치보기로 일관한 데서 빚어진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의욕만 앞섰다" 는 비판과 함께 "등원 이후 뭐하나 제대로 실천한 것이 없다" 며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 원로의원은 "젊은 의원들이 고민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며 "그러나 초선들마저 몸을 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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