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맹서 애증까지:고수석의 북·중 돋보기] ① 김정일과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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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과연 압록강을 건널까요?
지난주부터 그의 중국 방문설이 흘러나오면서 정부 관계자 및 국내외 언론 들이 그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의 방중은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그가 이번에 중국을 방문하면, 최초로 방문한 1983년을 포함해 6번째가 됩니다.
김 위원장에게 중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그를 만났거나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 북한 문헌들을 종합하면 중국은 그에게 부러움의 나라이자, 북한을 배신한 나라입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입니다. 김 위원장이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표현한 대로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천지개벽을 일구어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북한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살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아들인 그도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그에게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지요.
둘째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입니다. 중국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의 극적인 방중에 이은 1979년 국교 정상화로 미국으로부터 위협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면서 경제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었지요. 김일성도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요. 그러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통해 미국에 타진했지만, 키신저(Kissenger) 국무장관의 무반응으로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김 위원장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경제개발이 중국처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6자회담보다는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늦지만, 결정한 사항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배신자로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 선택입니다. 중국은 1978년 12월 18일~23일 제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중전회)를 거치면서 개혁·개방을 선포했습니다. 국경을 접한 중국이 사회주의의 대원칙인 계획 경제를 버리고 과감하게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을 36살의 김정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3중전회가 끝난 이틀 뒤 김정일은 ‘우리 식대로 살아 나가자’라는 구호를 내놓으면서 중국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현했지요. 그러면서 자력갱생을 더욱 강화합니다.
둘째는 한중 수교입니다. 북한으로서는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맺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뜩이나 1990년대 초 동구 유럽이 무너지면서 불안감에 떨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한중 수교인지라 말문이 더 막혔지요. 북한은 이에 질세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중(1992년 9월)에 맞추어 중국을 “제국주의에 굴복한 변절자이자 배신자”라고 비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한중 수교 이후 더 이상 중국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보호받기 힘들게 되자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지요.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1964년 중소 분쟁이 지속되고 더 이상 소련으로부터 안보 보장을 받을수 없게 되자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다음회에는 중국이 바라보는 김정일을 계속합니다.

☞고수석 기자는 중앙일보 사회부· 전국부를 거쳐 통일문화연구소에서 북한 관련 취재를 했다. 중앙일보 전략기획실 차장. 고려대에서 ‘북한· 중국 동맹의 변천과정과 위기의 동학’ 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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