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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과 북의 두 환영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에 47년간 억류됐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 7월 귀국한 국군포로 두 명을 위한 환영 및 퇴역식이 그제와 어제 각각 소속 사단에서 비공개로 치러졌다.

50년 만에 북한을 탈출해 같은 달 귀국한 나머지 한 명도 곧 '조용히' 퇴역할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른 이들의 주소는 물론 이름조차 모른다.

북한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탈출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정부는 이들의 귀환을 제대로 도왔는지도 알 수 없다. 당국이 일체 비밀에 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평양에서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위한 '평양시 군중대회' 가 열렸다. 5만여명이 운집하고 TV.라디오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북한 노동당 간부는 "비전향 장기수들은 수령과 당에 대한 의리심을 간직하고 혁명적 지조를 지켜 끝끝내 승리자가 됐다" 고 격찬했다.

한 비전향 장기수는 연설에서 "이남 인민들은 김정일 장군님을 민족의 구세주, 통일조국의 대통령으로 따르고 있다. 날이 갈수록 민심은 북으로 쏠리고 위대한 장군님의 정치를 받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그리고 저녁엔 동평양대극장에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일철 인민무력상 등과 평양 시민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축하공연을 했다.

국군포로의 퇴역식을 쉬쉬 하며 치른 데 대해 국방부는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의 안전과 이남 가족들의 의사를 고려했다" 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1994년 국방부장관.국회 국방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퇴역식을 치르고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훈장까지 수여한 조창호(趙昌浩)씨의 경우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말인가.

97, 98년 귀국한 양순용(梁珣容).장무환(張茂煥)씨 등도 퇴역식을 공개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국방부의 설명은 구차하기만 하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언론과 접촉할 길마저 막고 있다니, 예컨대 탈출 과정에서 정부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흠 같은 게 밝혀질까봐 꺼린다는 의혹도 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심기(心氣)' 를 과도하게 의식한 탓이라는 눈총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귀환 포로들이 누구를 위해 싸우다 붙잡혀 반세기 동안 고초를 겪었는지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이런 분위기니 남북 문제에 대해 몇마디 당연한 지적을 한 야당 총재를 일부 대학생들이 '매국노' '수구세력' 으로 매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처럼 요란하게 군중대회나 열자는 말이 아니다. 귀환 포로 처우가 적어도 상식에는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억류 생활, 지금의 심경을 국민은 들을 권리가 있다.

자라는 아이부터 기성세대까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국가의 의미를 되새길 기회도 주어야 한다.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하지는 못할 망정 쉬쉬 하고 숨기기에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주어서야 말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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