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문병란 '전라도 젓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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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썩고 썩어도 썩지 않는 것

썩고 썩어서 맛이 생기는 것

그것이 전라도 젓갈 맛이다

전라도 갯땅의 깊은 맛이다

괴고 괴어서 삭고 곰삭아서

맛 중의 맛이 된 맛

온갖 비린내 땀내 눈물내

갖가지 맛 소금으로 절이고 절이어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맛

소금기 짭조름한 눈물의 맛

장광에 햇살은 쏟아져 내리고

미닥질 소금밭에 소금발은 서는데

짠맛 쓴맛 매운맛 한데 어울려

설움도 달디달게 이어가는 맛

- 문병란(65) '전라도 젓갈' 중

세상에 썩어서 좋을 일이 없는데 젓갈만은 썩어야 제 맛을 낸다. 이 나라 팔도강산 그 어디 역사나 시대의 아픔이 없는 곳이 있을까마는 문병란은 군침도는 전라도 젓갈에다 땀과 눈물의 맛을 얹혀 한술 더 뜨고 있다.

나를 길러준 어머니의 땅, 어머니의 손맛, 사랑맛이 버무려진 젓갈에 길들여진 입맛으로 시를 익혀내는 솜씨가 맵짜다. 설움도 곰삭으면 이렇게 달디달게 되는 것을.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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