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신문개혁의 주체는 독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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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린스키라는 언론학자는 1980년대 중반에 쓴 글에서 미국이 의회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언론이 나라의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갈등을 통합하는 기능까지 함으로써, 의회의 위상이 위축되고 언론이 점차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이 정당이나 의회의 권능을 능가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국론을 통합해 사회를 안정시키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학자들 가운데 그 이유를 언론의 정파적 초연성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이런 기풍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한 언론인으로 월터 리프먼을 들 수 있다. '여론'이라는 명저로 널리 알려진 그가 늘 강조한 것이 초연성이었다. 그는 언론인이란 여러 세력의 이해 갈등에서 멀리 떨어져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하며, 기사를 쓸 때도 언제나 절제와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이 초연성을 확립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전을 더디게 한 것도 독자였고 진전을 재촉한 것도 독자였다. 1780년대에서 1860년대에 이르는 정론지 시대에 신문은 특정 정파의 앞잡이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독자들은 모두가 정치에 매몰돼 있어 신문이 정파성을 띠지 않고는 독자를 모을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정파를 대변하던 '모닝 크로니클'의 사주 아론 버어와 '이브닝 포스트'의 발행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사소한 일로 권총 결투를 벌여, 워싱턴 대통령 시절에 재무장관까지 지낸 해밀턴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거물까지도 독자들이 질러대는 고함에 넋을 빼앗겨 로마시대의 검투사가 되고 만 셈이다.

정파신문에 염증을 느끼고 탈정치화한 황색 저널리즘을 불러들인 것은 산업화와 대중교육을 통해 새로 양산된 월급쟁이 독자군(讀者群)이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정치기사가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다. 황색 저널리즘은 그들의 환호 속에 반세기에 걸쳐 영화를 누렸지만 그들이 등을 돌리자 무대를 떠났다. 1901년 허스트의 '저널'지가 사설을 통해 "나쁜 정치인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죽여 없애는 것"이라고 주장한 뒤, 한 무정부주의자가 매킨리 대통령을 쏘아 숨지게 하자 독자들은 허스트의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이 신문에 대해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황색 저널리즘은 퇴조했다.

신문 시장에서 황색 저널리즘을 제치고 지적신문(知的新聞)의 시대를 연 것은 '뉴욕 타임스'였다. 객관성.균형성.공정성의 대명사가 된 이 신문은 '아침 식탁보를 더럽히지 않는 신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신문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신문은 사실에 덧칠을 하지 않는다는 평판 덕분에 단숨에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새 시대를 이끈 공은 뉴욕 타임스가 아니라 질적으로 수준 높고 양적으로 탄탄한 뉴욕의 지식층에 돌려야 한다. 뉴욕의 좋은 독자가 좋은 신문을 일군 것이다. 이런 일련의 전개과정은 신문이야말로 기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만드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요즘 신문개혁 문제가 대중적 화두가 되고 있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많은 국민이 신문개혁을 바라고 있다. 국민의 불만 가운데 핵심적인 것은 신문이 정파적으로 초연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문을 초연성 위에 바로세울 방안은 없을까? 그런 문제의식에서 논의가 일더니 이번 국회에서 신문개혁을 위한 법 개정이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확인해둘 바가 있다면, 신문의 존재 양식을 규정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독자라는 사실(史實)이다. 독자 요인과 관계없이도 좋은 신문이 나오게 할 기발한 법은 없다. 미국의 예가 말하듯이 초연한 신문, 격조 높은 신문은 초연한 독자, 격조 높은 독자가 만든다. 정파성에 빠져 있는 신문에 대해, 또는 정파성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독자가 늘고 있는 현실에 우리는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 독자들이 새로운 신문을 만들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