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히로시마 페스티벌 데뷔상 받은 이명하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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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 데뷔상은 가장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신인감독을 위한 상입니다. 수상자는…, '존재' 를 출품한 한국의 이명하 감독. "

제8회 일본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폐막식이 열린 28일 오후 히로시마 국제청년회관. 경쟁부문 수상자 소개에 나선 국제애니메이션작가협회(ASIFA)미셀 오셀로 회장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장내는 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상기된 표정으로 단상에 오른 이명하(李明河.26)감독은 상금 50만엔(약 5백25만원)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팻말을 받고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겠다" 고 소감을 밝혔다.

데뷔상은 그랑프리.히로시마상.기노시타 렌조상 등과 함께 경쟁 부문 4대 본상 중 하나. 이번 대회에는 59개국에서 모두 1천2백31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한국 작품이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본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특히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꼽히는 히로시마 대회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더욱 깊다고 할 수 있다.

집에서 쫓겨난 고양이와 그를 위로하려는 낯?통해 실존의 의미를 경쾌한 코믹터치로 그려낸 '존재' 는 올해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李감독의 졸업작품.

"사물에는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사라지면 존재해야 할 의미도 없어지죠. 저는 밝음과 어두움, 비오고 시끄러운 거리와 조용한 술집, 개와 고양이 등 서로 '상대적' 인 입장에 있는 것들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무겁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

1998년부터 구상에 들어가 지난해 여름 넉달간의 작업을 통해 혼자서 작품을 완성했다는 李감독은 집에서 작업중이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많은 부분이 날아가 버려 애를 먹었다고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특히 이 작품은 주인공 개와 고양이가 '멍멍' '야옹' 하고 이야기하면 내용이 자막으로 처리되는 기발한 방식으로 진행돼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는데 개와 고양이 소리는 다름아닌 李감독 자신의 목소리.

제인 필링.빌 플림턴 등 심사위원들로부터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등 극찬에 가까운 심사평을 들으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한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3D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시네픽스 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李감독은 "우선 회사에서 만드는 작품 제작에 전념하면서 다음 작품을 신중하게 구상해 보겠다" 고 포부를 밝혔다.

히로시마〓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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