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금통위원들, 문 닫아걸 이유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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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8일 기획재정부 차관이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 금리를 11개월째 연 2%로 유지했다. 이를 놓고 ‘관치금융’의 부활이란 비판이 일었다.

1998년 한국은행법 개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한은은 치열한 로비전을 벌였다. 밀고 당기기 끝에 한은은 금융기관 감독권을 포기하는 대신 독립성을 보장받는 선에서 타협했다.

한은 입장에선 아까운 ‘실리’였지만 ‘독립성’이란 설립 이래의 ‘명분’이 더 중요했다. 정부는 열석발언권 제도를 도입,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한은법상 ‘기획재정부 차관 또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열석하여 발언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물론 참석과 발언뿐, 의사 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다. 법 개정 후 전철환 총재 시절 정덕구 차관이 몇 번 참석한 적이 있다. 그리고 10년여, 이 제도는 사문화됐다. 나가 얘기할 필요도 없이 공조가 잘됐던 건지, 서로 체면을 구길 가능성이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금통위는 금통위원들만의 자리가 돼 왔다.

흔히 관치라는 말을 쓸 때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초법적 수단으로 왜곡된 통화 정책을 강요했느냐 하는 문제다. 우선 정부의 열석발언권은 법적 권리다. 참석 자체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이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야 회의 6주 후 공개되는 의사록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는 이날 2%로 동결된 금리가 금통위의 기본 생각과 달랐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금통위의 금리 결정과 관련, 시장 컨센서스는 이미 2% 동결에 맞춰져 있었다. 3월로 임기가 끝나는 이성태(금통위원장) 한은 총재가 임기 전 ‘선제적 통화 정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 시기를 이달로 보는 것은 대세가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정부 측 인사의 참석 자체만으로도 금통위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준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관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어렵게 독립성을 부여받은 금통위원들을 무시하는 소리다.

이 총재가 말했듯 금통위의 의사 결정은 전적으로 금통위원들의 몫이다. 이건 권리면서 의무다.

정부 측의 열석발언권 행사가 자신의 의사에 반한 결정으로 이어진다면 독립성 운운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외려 정부는 열석발언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금통위원들은 이를 포함한 여러 의견을 들어 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다. 문을 닫아걸 이유가 없다. 다만 열석발언권의 취지상 최종 표결 전에는 나와 주는 게 모양새가 나을 듯싶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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