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탑승, 비행기 뜬 뒤 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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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불발로 끝난 미국 여객기 테러 미수 사건 당시 위험인물로 분류됐던 범인의 탑승 사실이 비행기 이륙 후 파악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미 출입국 당국은 범인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가 디트로이트에 도착하는 즉시 그를 조사할 계획이었다고 LA타임스(LAT)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LAT에 따르면 미 출입국 담당 요원은 나이지리아 국적의 이슬람 급진주의자가 암스테르담발 디트로이트행 여객기에 탑승한 사실을 비행기 출발 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보기관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범인의 탑승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당 정보는 지난해 10월 범인의 아버지가 나이지리아 주재 미 대사관에 전달한 내용으로 미 국무부가 보유한 자료였다.

익명의 출입국 관계자는 “정보를 미리 알았으면 암스테르담에서 그를 탑승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 당국은 “범인이 급진주의자로 분류된 50만 명 중 1명이었고 위협적인 인물로 간주되지도 않아 탑승을 거부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범인은 4000여 명의 탑승 거부 명단에도, 2만 명에 달하는 테러 요주의 인물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LAT는 “그렇더라도 이는 탑승객 검색 시스템의 난맥상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미 출입국은 이 사건 후 정보 담당자들이 비행기 이륙 전에도 승객 관련 정보를 더 쉽게 접근하도록 검색 과정을 재점검하고 있다. 범인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은 미국 출입국 요원이 주재하는 전 세계 9개 공항 중 하나다. 하지만 출발 며칠 전에 발부되는 예약자 정보는 사생활 침해 때문에 내용이 제한돼 요원이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LAT는 전했다.

◆오바마 “테러 책임 내게 있다”=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여객기 테러 기도 사건과 관련, “궁극적으로 책임은 (대통령인) 내게 있다”며 책임 소재 공방에 선을 그었다. 그는 대국민연설에서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이나 조직의 잘못이 아니라 정보기관 전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라고 덧붙였다. 공화당 등 보수 진영과 언론은 정보기관들이 사전에 테러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으로 밝혀지자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장과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해 왔다.

게다가 리언 패네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휴가라며 사건이 터진 크리스마스 당일은 물론 일주일간 본부에 복귀하지 않은 사실이 전해져 구설수에 올랐다. 휴가 중이던 CIA의 ‘2인자’ 스티븐 케이프스 차장 역시 지난달 30일 CIA 요원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프가니스탄 테러가 일어나고서야 워싱턴으로 복귀했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관련자 문책보다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는 “정보기관들은 테러 위협에 대한 모든 정보를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전파하고 유기적으로 취합하는 기능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백악관은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보고서 요약본을 공개했다. 보고서는 미 정부가 충분한 정보를 입수했으며 범인 신원도 확인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또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은 게 아니라 정보를 서로 연결 지어 분석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미 위험인물로 분류됐던 범인은 미국 비자 신청 시 이름 철자를 다르게 써 무사히 비자를 발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최상연 특파원,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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