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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강건너 불구경-북 미사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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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또 하나의 제네바 회담을 노리나.

북한이 대륙간 탄도탄 개발 계획을 조건부로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장거리 미사일 발사하는 데 2억~3억달러 드니까 다른 나라가 매년 2~3회 인공위성을 발사시켜 주면 그것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인공위성 1회 발사에 2천만달러에서 1억달러 정도 드니까 해볼 만한 거래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난해에 북한은 미사일 수출을 중지하는 대신 매년 10억달러씩 3년간 30억달러를 달라고 미국에 요구했고 이번에는 대륙간 탄도탄 개발중단을 미끼로 인공위성 발사까지 요구하고 있으니 가히 미사일 계획은 북한에 '황금알 낳는 거위' 인가.

미사일 계획은 죽이지 않고 부분 부분 쪼개서 대가를 요구한다.제네바 핵합의로 수지맞은 북한은 민주당 정권이 계속되는 한 미국과 미사일 타협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돈을 주고 상대방의 군사위협을 감소시키는 정책은 탈냉전 후에 나왔다.

미국은 구 소련 제국이 보유한 핵무기가 분산되면 세계질서가 혼란해질 것을 우려, 러시아와 구 소련 국가들에 달러를 지원했다.

민주당 샘 넌과 공화당 리처드 루가 두 상원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한 넌-루가(Nunn-Lugar)법안에 근거, 1991년에 협력적 위협감소 계획을 시작했다.지난 9년간 미국은 24억달러를 지원, 6천여기에 달하는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대.핵무기를 해체했다.이 경비 중 18억달러가 핵무기 해체 작업을 하는 미국인들에게 지출되었다니 놀랄 일이다.

돈과 군사위협을 맞바꾸는 방식에는 두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미.소간의 적대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바뀐 뒤라는 것, 둘째는 상대방 영토 내에 들어가 위협을 확인하고 공동으로 해체하는 투명성 보장이다.이렇게 볼 때 북한의 제안이 타협에 이르려면 북.미간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장.단거리 가릴 것 없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계획 전모에 대한 투명성 보장과 수출중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북한 미사일에 큰 관심이 없다.

사거리가 한반도를 벗어나고, 관심을 나타내면 비용을 부담하라고 할까 우려해서인가.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원칙은 갖고 있어야 한다.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의 안보문제 해결능력이 북한과 너무 대조적이라는 데 있다.

북한은 핵카드로 미국과 직접 협상하고, 미사일 카드로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있으며, 90년대 초반에 미국 핵무기 철수와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달성했다.반면 한국은 90년대에 미국과 매듭지었어야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 미사용 미군기지 반환, 미사일 사거리 연장, 작전권 환수 어느 것 하나 해결한 것이 없다.

북한과 군사협상에서도 직통전화 하나 얻지 못했다.그래서 지금 통일 조급증과 얽혀 반미감정이 확산되고,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서 반미는 안된다고 외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의 경의선 복구에 따른 안보문제도 예외가 아니다.경의선을 복구하게 되면 순수 방어용 지뢰를 제거해야 하고, 군부대를 이동해야 함은 물론 더 나아가 서울로 오는 주 공격선이 무방비로 열리게 되는데,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군사위협 감소책은 하나도 제기되지 않고 있다.

반미와 친미, 진보와 보수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데 국회는 쉬고 있고 수십명의 국회의원들이 공화.민주 전당대회를 보러 미국에 왔다.미국 정치에서 정작 배워야 할 것은 대권경쟁이 아니라 의원들이 정파를 초월해 국가안보 위협을 확실하게 감소시키기 위해 법안을 공동으로 만들고 행정부에 지침을 주는 평상시 정치활동이다.

이제 즉각 국회를 개회해 남북한 관계진전에 따른 북한 군사위협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법안을 여야 공동으로 만들어야 한다.남북한 정부가 우선순위를 미루고 있으면 정치인들이 나서 안보를 챙겨야 한다.미래를 내다보는 남북한간 협력적 위협감소 정책을 왜 미리 못만드나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용섭(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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