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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관련 독일 사업가 CIA가 청부살해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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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9·11 테러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리아계 독일인 사업가에 대해 암살을 기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CIA는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하고 있지만 독일 정부가 자체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혀 양국 간 마찰이 우려된다.

미국의 월간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는 최근 펴낸 1월호에서 CIA가 2004년 시리아계 독일인 사업가인 마몬 다르카잔리(사진)를 암살하기 위해 사설 경호 업체인 ‘블랙워터’ 직원들을 고용해 함부르크로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블랙워터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에서 CIA와 함께 비밀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지(Xe) 서비스’의 전신이다. 잡지는 또 당시 암살 작전이 독일 정부나 함부르크 주재 CIA 지부에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됐다고 전했다.

◆다르카잔리는 9·11 테러 용의자?=보도에 따르면 암살 표적이 된 다르카잔리는 당시 미 정보당국에 의해 9·11 테러범 3명과 연관이 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가 유럽 지역의 알카에다 핵심 요원으로 테러범들의 범행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리아 출신으로 함부르크에서 거주해온 다르카잔리는 9·11 테러 직후 미 정보당국에 의해 용의자 명단에 올랐다. 하지만 독일 당국의 조사 결과 별다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이처럼 잊혀졌던 이 사건은 최근 배니티 페어의 보도로 다시 세간의 조명을 받고 있다. 이 잡지가 최근 전직 블랙워터 직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르카잔리에 대한 암살 기도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잡지는 “암살단이 수주일 동안 다르카잔리를 미행하면서 그를 어떻게, 어디서 처리할지를 모의했다. 하지만 결국 미 정부가 그에 대한 암살 계획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다르카잔리는 독일 ARD방송에 출연해 “CIA가 독일에 암살단을 보냈다는 것은 나를 청부 살해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며 “당시 종종 감시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스페인 열차 테러 때도 체포=다르카잔리는 2004년에도 테러 관련 혐의로 독일 당국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스페인 정부가 그해 3월 191명의 희생자를 낸 마드리드의 통근열차 폭탄테러 사건에 그가 연루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는 그가 유럽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이며 오사마 빈 라덴의 재정적 후원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당국은 “조사 결과 알카에다 조직원 몇 명과 접촉한 적은 있지만 알카에다에 가입하거나 마드리드 열차 테러와 관련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그를 풀어줬다.

◆독일, 암살 기도 사건 본격 조사=독일 언론들은 함부르크 검찰이 이 사건을 본격 조사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검찰 관계자는 “언론에서 제기한 다르카잔리 사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하지만 실제로 암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정보 당국 관계자는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150여 명의 극단주의자들을 감시하고 있으며 다르카잔리도 이에 포함돼 있다”며 “하지만 그가 알카에다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독일 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자칫 미국과 독일 간 심각한 외교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암살 기도가 사실일지라도 비밀작전인 만큼 진상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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