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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갈길 먼 여성인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 때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장명수(張明秀)한국일보 사장에게 "남쪽에 남존여비가 있느냐" 고 물었다. 張사장은 "네, 약간 있습니다" 고 대답했다. 그러나 우리 여성차별의 실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성감별과 여자아이 낙태, 성폭력범죄율 세계 2위, 직장내 성희롱 만연, 가부장제 악습을 유지.재생산하는 호주제도, 성차별적인 여성 우선해고, 여성의 비정규직 확대 등….

우리나라 여성인권의 현주소다. 국내 여성의 인권문제는 세계적 이슈가 될 정도로 기본적인 것들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인권분야에 성(性)의 인지적 측면을 통합해 정책을 수립.실행해야 한다.

우선 고용 측면의 차별을 보자. 모집.채용과 교육.배치.승진의 차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위배, 정년.퇴직.해고 등 직.간접 차별문제를 안고 있다. 이 문제는 우선 간접차별 규제와 직장내 성희롱 예방 등을 위해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을 정착시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고 그 지침의 이행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남녀 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에 따른 성차별 분쟁해결을 위해 행정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고용.승진할당제 실시를 확대하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구조조정 때 성차별로 인한 부당해고를 방지해야 한다. 이와 함께 무분별한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것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사회보장제도 측면에선 여성의 독자적인 연금권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1인 1연금제' 를 도입해 여성도 독립적으로 연금의 혜택을 누리게 해야 한다.

출산수당과 산전(産前)진찰비 등 모성(母性)보호비용의 사회분담화가 미흡한 것도 문제다. 모성은 국력과도 관계가 있는 만큼 모성을 보호하는 비용은 국민건강보험에서 분담토록 해야 마땅하다.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근로자들이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하는 것도 시급하다.

아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장애인, 외국인 여성노동자의 경우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루빨리 여성 장애인이 안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를 파악한 뒤 이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성 장애인의 가사와 육아(育兒)활동을 지원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법과 제도상으로는 장남에게 승계되는 호주제도가 큰 문제라고 본다. 이 제도는 아들을 낳아 기필코 대(代)를 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재생산하고 있다. 평등한 가족관계를 위해선 부계 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의 근간이 되는 호주제를 속히 폐지해야 할 것이다.

또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으로 남녀 성비(性比)불균형이 심해 앞으로 사회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년간 여아 대 남아 비율은 평균 100 대 112.8이다. 이밖에 법 집행에서 성에 입각한 편견, 남성 중심의 명절.제사문화와 혼례.장례문화 등 성차별적인 전통관습도 여전하다.

따라서 남녀가 많은 문제의 해결에 공동 참여하고 함께 책임질 수 있도록 제도 마련과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체계적인 성교육을 통한 국민의식 향상도 중요하다.

한편 가족 내 폭력과 강간.성적학대, 인신매매 및 강제매춘 등 폭력 측면의 성차별도 큰 문제다. 이런 문제를 줄이고 방지하기 위해선 각 분야에서 인권교육 및 인권관련 법률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를 독립 기구로 설립,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들도 구제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여성비하, 성 상품화, 성 역할 규정에 대한 대중매체 제작방향의 전면개혁이 요구된다. 성폭력특별법 등 관계법령 정비도 시급하다. 성폭력의 정의를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로 규정하고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를 폐지해야 한다. 제3자도 고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98년 한국 여성의 권한 척도를 세계 83위로 규정했다. 이제 성차별 사회를 끝내기 위한 큰 결단이 필요한 때다.

남인순(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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