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31년前 약속 지켰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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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백명씩의 남북 이산가족들이 50년만에 다시 만난 15일 서울 남산에서도 의미있는 상봉이 이뤄졌다.

이날 낮 12시 남산 꼭대기 팔각정에는 10대 학생에서부터 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남녀 50여명이 한 노신사를 에워싸고 재회의 감격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경기도 의정부시 중앙초등학교 김일수(金日秀.54)교감과 金씨가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

"선생님, 건강하셨군요. " "큰 절부터 받으세요. " "그래, 지금 무얼하며 지내니, 애들은 몇이나 되고…. " 金씨와 제자들간의 '팔각정 약속' 은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인천교대를 졸업한 후 첫 부임지였던 경기도 동두천시 생연초등학교 2학년 담임시절. 그는 학기 초 학생들에게 '성실.정직' 이라는 급훈을 가르치면서 훌륭한 사람이 돼서 2000년 광복절 정오에 서울 남산에서 만나자고 학생들과 약속했다.

'아직 철도 제대로 들지않은 '어린 제자들과의 약속은 金씨가 양주군 남면초등학교 등 10개 학교를 옮겨다니다 95년 의정부시 서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승진하기 전까지 매년 계속됐다.

그동안 金씨가 담임을 맡았던 1천5백여명의 제자 중 50여명이 이날 짧게는 5년, 길게는 31년 전의 약속을 지킨 것.

70년 동두천시 생연초등학교 6학년 제자였던 김미숙(金美淑.43.주부.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감수성이 예민하던 때여서인지 선생님과의 약속을 수첩에 적어놓고 오늘을 기다려왔다" 고 말했다.

'오는 9월 교장 승진을 앞두고 있는 ' 金씨는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을 수십년 동안 잊지 않은 제자들을 보니 새삼 교직의 보람을 느낀다" 고 했다.이날 제자들은 매년 광복절 때마다 모임을 갖기로 새로운 약속을 했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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