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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릴레이 대담] "흡수통일 배격 국민의식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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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앙일보는 한국통일포럼(회장 백영철 건국대교수)과 공동으로 진행한 8.15 55주년 기념 통일문제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 집중대담을 마련했다.

▶남북관계 전반▶남북경협▶평화체제 구축▶남북관계와 국내정치 등 4개 분야로 진행된 대담에서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짚어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대담자 8명은 한국통일포럼에서 활동 중인 학자들로 이번 여론조사의 설문항목 작성에도 참여해 객관성과 전문성을 높이고자 했다.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국민의식 변화가 뚜렷하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현실의 변화' 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權교수〓역사적으로 정치적 사건이 시대의 흐름보다 뒤처져 발생할 경우 상황이 압축적으로 변화되곤 한다. 1948년 백범 김구(金九)선생의 방북이 시대보다 앞서 간 경우라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오히려 시대의 흐름보다 뒤처져 발생한 것 같다.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상황이 압축적인 변화를 겪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徐교수〓정상회담의 최대 의미는 남북이 상대방을 명실상부하게 국가적 실체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남북관계는 아직 이런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權교수〓남북관계를 냉전대결시대→평화협력시대→통일협력시대 등 3단계로 구분해 본다면 남북 정상회담은 냉전대결시대를 마무리하고 평화협력시대로 접어드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徐교수〓우리 국민들이 통일과 관련, 상당히 성숙된 국민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응답자 중 93%가 협상에 의한 통일방식을 선호한 반면 흡수통일은 상당히 배격하고 있다. 정상회담으로 남북한 당국간 대화의 길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權교수〓국민들이 통일 비용에 대해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적' 입장을 취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젊은층일수록 '통일은 좋지만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반대' 라는 태도를 보였다. 정부로서는 이런 사회흐름을 감안한 통일비용 조달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徐교수〓이번 여론조사는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을 가장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미국.중국에 대한 호감이 엇비슷하고 일본에 대한 감정이 가장 나쁘다. 특히 20~40대 젊은 세대들은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의 편차가 심하다. 이는 지난 80년대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경향이 미국 편중에서 주변 4강에 대한 균형외교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權교수〓걱정되는 대목도 있다. 지역주의가 대북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경북지역은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여타 지역과 비슷한 반면 부산.경남은 지지도가 낮게 나왔다. 이런 분포는 97년 공동정권이 출범할 때와 비슷한 정치구도다. 이는 지역주의가 경계선을 넘어 대북정책에 힘을 발휘하는 일종의 월경(越境)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북문제는 정당.정파.지역을 초월한 민족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가 작용하는 것은 상당히 우려된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경제협력

▶南宮교수〓남북경협은 정치적 통일 이전에 삶의 통일을 촉진시킬 수 있다. 적대관계 청산과 상호이익, 나아가 신뢰구축에도 기여한다. 다만 경협은 지속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고 규모도 확대해야 한다. 경협 확대시 경제논리가 바탕이 돼야하며 세금 등 추가적인 사회비용을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金박사〓응답자 대다수는 경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식량.비료 지원도 남북관계의 개선을 봐가며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南宮교수〓상당수 국민이 경협과 대북지원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혼동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식량.비료 지원은 대북지원이고 대북투자는 경협이다. 대북투자를 시혜로 오해하고 있다.

▶金박사〓경협은 대북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통일한국의 재설계 차원에서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南宮교수〓 응답자의 약 80%가 '북한이 시장경제체제로 개혁할 가능성이 있다' 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나친 낙관이라고 본다. 북한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상당히 조심스럽고 점진적으로 경협을 추진할 것이다.

▶金박사〓현재 북한이 국제금융기구 등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경협 초기과정에서 남한의 공적자금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럴 경우에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南宮교수〓경의선의 경우 20㎞만 복원하면 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휴전선에서 신의주까지를 복선화하고 노후된 레일을 개량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렇게 하려면 무려 3조~10조원이 들어간다.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우리가 적극 도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金박사〓그렇다고 해도 대북투자에 지나친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북한의 투자환경이 점차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南宮교수〓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다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민간기구와 국제단체에 맡겼으면 한다.

▶金박사〓국군포로와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서 상호주의를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상호주의를 고집할 경우 북한과의 다른 협상에서 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

***평화체제 구축

▶朴교수〓한반도문제의 지배적 화두(話頭)가 군사안보에서 경제사회협력으로 이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긴장완화를 의미한다. 군을 동원한 경의선 철도 복구사업과 지뢰제거가 이뤄지면 긴장완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평화체제 구축은 평화협정 당사자.주한미군.대량살상무기 등이 얽혀 있어 남과 북이 해결하기 어렵다.

▶河교수〓군 당국간 핫라인 설치, 군사훈련 사전통보, 공격용 무기체계의 후방배치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간에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남북회담에서 자주.평화.통일 중 평화만 제외돼 남한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朴교수〓한국민의 67%가 평화체제의 남북 당사자 해결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북한이 자신의 체제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보는 한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평화협정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남.북간, 북.미간 평화협정을 동시에 체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河교수〓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주요 행위자는 남북한이기 때문에 평화체제도 당사자간에 이뤄져야 한다. 6.15 공동선언으로 남과 북은 서로 정통성을 인정하고 문제해결의 당사자로 서로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朴교수〓북한은 미국이 자신에게 첨단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 개선과는 별도로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을 필요로 할 것이다.

▶河교수〓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미사일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되기를 바랐다. 남북간에 탈냉전이 이뤄진다 해도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해소에 소극적이면 결국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타협이 이뤄지면 북.미관계는 상대적으로 가속화될 것이고 평화체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朴교수〓주한미군을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바꾸는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는데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북한이 군사동맹을 해체한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이는 한.미군사동맹의 폐기를 뜻하기 때문에 국내 정치역학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높지는 않다.

▶河교수〓남북한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려면 정치.군사적 신뢰구축 과정이 추진돼야 한다. 남북간 신뢰구축이 이뤄지면 주한미군의 역할변경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남과 북의 신뢰가 전무한 상태에서 주한미군의 성격 변경 논의부터 시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국내정치

▶沈교수〓여론조사에서 국민은 정부가 통일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정부는 이런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국민은 여야의 초당적인 협력기구 구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任교수〓정상간의 합의사항은 초당적으로 지지해야 하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여야의 정책협의체인 '대북문제에 관한 여야 영수기구' 와 국회 내에 '남북문제특별위원회' 를 설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沈교수〓정부와 여당이 먼저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여야의 정치권을 벗어나 정부.정당.학계.재계.노동계 등 각계각층의 대표가 참여하는 가칭 '한반도화해협력기획단' 구성을 고려해 볼만하다.

▶任교수〓탈냉전의 세계사적.민족사적 대세에 맞는 여야간의 '인식공동체' 형성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초당적 기구가 마련돼도 논쟁만 벌일 가능성이 크다. 야당의 참여가 없을 경우 미래가 불확실한 합의사항을 충실히 지키려는 인센티브가 없어져 북측이 자칫 남북대화에 소극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沈교수〓남북 정상회담에서 명칭이 연합이든 연방이든 1국가 2체제 방식에 접근한 만큼 종래의 대결적 시기에 만들어진 제반 제도.관행 등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여론조사에서 국가보안법과 헌법의 영토조항 등의 개폐에 대해 찬성의견이 높은 것은 화해협력과 평화공존 분위기에 맞게 전반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任교수〓지금은 통일논의가 아닌 평화를 이야기할 때다. 평화공존을 위해 민간차원에서 할 수 있는 교류영역을 넓혀나가야 한다. 이런 과도기적 '계약공동체' 단계를 거쳐 국가연합을 실현하고 난 뒤 장기적으로 연방제로 이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沈교수〓정부는 흡수통일이 어렵고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현실을 감안한 일관된 대북정책을 통해 장기적으로 제도적 통합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또한 민족동질성의 통일을 위해 6.15 공동선언을 지지.실천하기 위한 공동행사를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현재 분열돼 있는 관변.민간.재야의 통일단체들을 공동행사를 통해 통합해나가야 한다.

▶任교수〓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이 냉전의식에서 점차 탈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앞으로 실무회담과 교류가 확대되면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도 높아져야 할 것이다.

정리〓이동현.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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