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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대생 농촌서 컴퓨터 봉사활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할아버지, 화면에 'ㄹ' 이 보이시죠. 왼손 검지로 여길 눌러보세요."

"이렇게? 어, 소리가 나네."

"잘하셨어요. 이제 'ㅏ' 자가 나왔네요. 오른손 중지로 누르면 되겠죠."

"이제 그 정도는 나도 해. 너무 다 알려주지 말어."

TV로만 봤던 PC앞에 처음 앉은 육순의 할아버지. 키보드 연습 프로그램을 켜 놓고 키보드를 하나하나 눌러보곤 어느덧 자신감이 생겼는지 대학생 선생님의 친절한 가르침에 오히려 역정이다.

한평생 농사일로 거칠고 주름진 손이 마치 게임기를 처음 대하는 어린이의 손처럼 바쁘다.

지난 1일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 마을회관. 광주 호남대학교 학생들의 '컴활' 이 한창 진행중이다.

농촌지역 봉사활동인 '농활' 이 정보화 시대를 맞아 컴활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PC가 마루를 가득 메운 가운데 14명의 학생들이 농민들과 컴퓨터를 맺어주기 위해 열심이다. 더 열심인 건 농민들이다. 50분 수업 후 10분 휴식 시간에도 PC앞을 떠나지 않는다.

첫날 수업이 끝난 밤 11시. 김수진(소프트웨어공학과 3년)학생은 "컴퓨터의 전원을 켜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할 때마다 새로운가 봐요. 오전.오후는 물론이고 저녁에도 왔다가 조금 전에야 다들 갔어요" 라며 뿌듯해했다.

전날 신리마을에 도착한 대학생들은 기업에서 기증받은 중고 PC 30대를 일일이 닦고 고칠 때만 해도 걱정이 앞섰다.

집집마다 방문해 컴활의 취지를 설명했던 방광민(소프트웨어공학과 2년)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오실지 몰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은 자식들이나 배우지 우리가 왜 배우냐고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오늘 다 오셨더라구요."

남녀가 구별 없듯 노소도 한결같다. 방 하나는 PC 다섯 대를 따로 설치해 오락실로 꾸몄다. 마을 아이들이 쉽게 PC와 친해지도록 여러 가지 게임을 깔았다. 이때문에 둘쨋날은 수업 시작 전부터 아이들로 시끌벅쩍했다.

"처음에 할아버지께서 마우스를 너무 어색해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손자 얼굴을 그리게 했더니 재미있어 하면서 금방 잘 하시더군요. 하루만에 아래한글 프로그램의 표 작성 기능까지 익힐 정도로 빨리 배우는데 놀랐습니다."

최치훈(정보통신학과 2년)학생은 "영어로 된 컴퓨터 용어가 많아 어떻게 하면 우리말로 쉽게 풀어 설명해 드릴까 고민" 이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평소 사용하던 용어 중에 이렇게 외국어가 많았는지 몰랐다" 며 입을 모았다. 처음 시작한 컴활이 풀어야 할 숙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것이다. 아직 농촌 지역에 전용선이 깔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리 마을 컴활 팀장을 맡은 최용귀(소프트웨어공학과 3년)학생은 "인터넷 전용선이 농촌 지역에도 보급됐다면 컴활이 더 좋은 결과를 낳았을텐데…. 겨울에 올 땐 나아져 있겠죠?" 라며 웃었다.

마을 이장 이선재(40)씨는 이미 인터넷 전용선을 신청했다고 자랑한다.

"PC를 배워서 인터넷을 이용한지가 벌써 1년이 넘었어요. 모뎀이지만 매일 농림부.전농.농협 사이트에 들어가서 유용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다른 주민들께도 권해드리고 있지만 매달 3~4만원의 통신비 지출이 농민들에겐 큰 부담이 됩니다. 농촌 정보화니 뭐니 말로 떠드는 전시행정보다 농촌 현실에 맞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번 컴활을 기획한 농촌지식정보화추진위원회(위원장 김효석 국회의원)가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방학때 한번 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컴활을 진행한 호남대 정보기술원과 컴퓨터 관련 동아리들은 이들 농촌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학기중에도 주말을 이용해 PC를 손봐주고 사용법을 알려줄 계획이다.

이번에는 신리마을과 함께 전남 담양의 남부마을, 장성의 내황마을을 시범마을로 선정해 4박5일 일정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전국에서 컴활을 활성화시킨다는 포부다.

호남대 정보기술원 최광돈 교수는 "이번 컴활은 농촌의 지식정보화를 위한 첫 만남일 뿐입니다. 농촌이 어떤 현실인지, 농민들이 뭘 원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면서 다음엔 '준비된 컴활' 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 말했다.

곡성〓 글 : 원낙연 기자

사진 :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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