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화해주간'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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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에서 처음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은 양측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를 극력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기대수준 미달이다.

예상했던 대로 남북군사위원회 설치와 같은 중요 사안들이 거의 언급되지 못했고 경협문제에 관한 협의도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진척을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통일방안과 다방면적 교류에만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6.15공동선언 후 정부측이 주장해왔던 것과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 실망스럽다.

이날 회의에서 대체적으로 의견접근을 보인 부분은 장관급 회담의 정례화와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정상화, 그리고 8.15를 전후해 '공동화해주간' 을 설정하고 통일을 위한 이벤트를 갖기로 한 것 뿐이다.

다만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설치됐으나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96년에 폐쇄된 연락사무소가 정상화된 것은 그런대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따라 일단 남북은 장관급 회담과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통해 당국간의 통상 대화채널을 유지할 수는 있게 됐다.

문제는 여기서 구체적인 긴장완화와 같은 문제들이 논의될 수 있어야 하는데 북한측의 태도로 미뤄볼 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물론 아직은 시작단계여서 단정은 금물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북한이 남측에 대해 갖는 기대가 단순히 남북화해의 모습을 계속 이어감으로써 그들의 외교노선 확대와 미.일교섭 등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전술적인 의미가 강한 것으로 비춰져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유의하고자 하는 것은 '남북 공동화해주간' 이다. 이는 공동선언의 가시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북측 제안을 우리측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어떤 형식,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북측은 매년 친북조직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이름으로 거행하던 통일축전을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현재 범민련 남측본부나 한총련 등은 '공동선언 관철과 민족의 자주.대단결을 위한 통일대축전' 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측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도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통일맞이 대축전' 를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것이 남북공동의 통일행사로 이어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자칫 이것이 또다른 형태의 범민련 통일축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없지 않다.

만약 남북간에 갖기로 한 통일이벤트가 지금까지 불법으로 간주돼 왔던 친북 민간행사를 당국까지 참여해 이른바 '전민족적' 인 모임으로 높여주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는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의 시각차이가 너무 큰 것으로 나타나면 그에 대한 실망도 비례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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