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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북한 “죽음의 조에서 기적 한번 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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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은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올랐다. 체구가 작은 동양인들의 벌떼 같은 스피드와 그물망 같은 조직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상대에 패한 이탈리아엔 재앙이었다. 44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북한 축구가 ‘황금세대’를 앞세워 다시 한번 기적에 도전한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브라질·코트디부아르·포르투갈과 함께 ‘지옥의 조’에 편성됐지만 이탈리아·소련·칠레와 한 조에 속했던 44년 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해외파 앞세워 세련미 더한 천리마 축구=꽁꽁 닫힌 북한 축구의 문은 최근 몇 년 사이 활짝 열렸다. 실력이 되는 선수들은 해외로 나갔다. 일본에서 뛰는 동포 선수들을 적극 불러들여 세계축구의 흐름에 발을 맞추고 있다.

북한의 에이스 홍영조(로스토프)는 2007년 세르비아 리그로 진출했다. 2008년 러시아로 무대를 옮겨 2부리그에 있던 로스토프를 1부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공헌했다.

재일동포 정대세(가와사키)와 안영학(전 수원)의 가세는 역습과 스피드만 앞세웠던 북한에 세련미를 더해줬다. 공격수 정대세 덕분에 파괴력이 배가됐다. 미드필더 안영학은 중원에서 균형추 구실을 하고 있다.  

◆‘황금세대’의 완성=북한의 경제위기가 심해진 1990년대 중반 북한 축구계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한정된 자원을 유소년팀에 투자하기로 했다. 북한 대표팀은 93년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한 뒤 98년까지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다. 대신 차분하게 저변을 살찌웠다.

효과는 10년 만에 나타났다. 200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17(17세 이하) 선수권 준우승을 시작으로 2005년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8강, 2006년 AFC U-19 선수권 우승 및 AFC U-17 선수권 준우승, 2007년 FIFA U-17 월드컵 16강 및 FIFA U-20 월드컵 본선진출 등 주요 청소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북한 축구는 자신감을 얻었다. 어린 선수들의 활약에 성인 대표팀도 자극을 받았다. 북한은 한국·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랍에미리트(UAE)와 치른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과했다. 정신력이 투철한 베테랑과 세련된 해외파,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신예들의 합작품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대회에서 성공을 거둔 청소년 대표 세대들은 이제 스물두세 살이 돼 성인대표팀에서 선배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박남철·이철명·박철민·김금일·이광혁 등이 대표적이다. 기초가 튼튼해진 북한 축구의 ‘황금세대’는 지금보다 미래가 더 밝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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