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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권의 길, 참여냐 방관이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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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호 22면

6·2 지방선거는 차기 대권 주자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유권자들에게 드러내는 때다. 왼쪽부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정동영 무소속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인 2010년은 정치적으로 격동의 해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11일 세종시 대안을 발표한다. 넉 달 가까이 정국을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세종시 논란이 정부의 대안 발표로 논란 종식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새로운 분란을 일으킬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런 세종시 문제가 올 초 정국의 핵이라면 그 결말의 파장은 6월 지방선거로 급격히 옮아갈 것이다. 세종시 대안의 생사와 그에 따른 파문이 지방선거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6·2선거와 차기 대권의 함수는

6월 2일의 지방선거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거의 중간에 다다른 시점에 치러진다. 이는 국민이나 정치권의 관심이 ‘차기 대통령은 누구냐’로 이동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번 지방선거의 성적표는 차기 대권 주자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 수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 출신이 유력 대권 후보가 되듯 지방선거는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당장 대권을 노리고 있는 인사들은 자신들이 지방선거에서 어떤 영향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어 지방선거는 대선 전초전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지방선거는 예비 대선 주자들의 1차 시험대로, 자신의 역량과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깊이 각인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몽준 '조기 전대도 좋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주로 약세를 보여왔다. 지방선거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세 의원은 지난달 2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당의 지방선거 전망을 어둡게 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이) 굉장히 어려울 걸로 본다.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째를 맞아 지방선거가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현 정부에 반대하는 분들의 투표 참여율이 훨씬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2006년과 2002년 선거에선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민자당(한나라당의 전신)이 여당이던 1995년에는 서울시내 25개 구청장 선거에서 겨우 2곳만 건졌다.
한나라당에선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움직임이 지방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에겐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런 명성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또 한번 입증됐다.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유세장에서 얼굴에 테러를 당한 상황에서도 그는 “대전은요?”라고 물으며 선거 걱정을 했다. 그의 그 한마디로 대전지역 판세는 뒤집혔다.

그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전면에 나설 수 있을까. 가능한 시나리오는 세 가지 정도다. 먼저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로 선출된 다음 2006년 때처럼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세종시 대안이 무산될 때 당에선 조기 전대 요구가 분출할 가능성이 크고, 차제에 친박 측이 당권을 잡아야 다음 총선과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는 조기 전당대회에 나서지는 않되 지방선거는 돕는다는 것이다. 당권 도전에 나서지 않더라도 선거를 돕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박 전 대표가 어떤 경우든 지방선거에 나서 한나라당이 좋은 성적을 내면 그의 대권의 길은 더욱 뚜렷해 질 것이다. 셋째는 조기 전대가 열려도 출마하지 않고, 지방선거도 방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나라당의 승리가 쉽지 않을 걸로 예측되는 지방선거에 구태여 나가 ‘선거의 여왕’이란 신화를 깰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한 친박 의원은 “조기 전대에서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를 비롯해 친박 내에서도 박 전 대표의 거취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박 전 대표로부터 그에 대한 어떠한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정몽준 대표 체제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친이계 한 당직자는 “조기 전대가 당권 싸움으로 비칠 수 있어 오히려 지방선거 전에 실시하는 것은 부정적”이라며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을 맡아 당에 기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조기 전대는 남경필·권영세 의원과 당내 소장파인 김성식 의원 등이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제기한 적이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정몽준 대표 체제로는 지방선거 승리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정몽준 대표는 지난달 “조기 전대를 해서 ‘승계 대표’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조기 전대론에 대해 ‘할 테면 해 보라’는 자세다. 그런 그가 당 대표로 지방선거를 무난하게 치러내면 위상은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실패할 경우 대권 꿈은 거의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 직면할지 모른다.

'곽영욱 사건'으로 견제받는 정세균
민주당에선 지방선거를 대권 레이스의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무소속) 의원, 손학규 전 대표, 이 세 사람이 지방선거부터 팽팽한 대권 신경전을 시작할 것이란 얘기다. 당권을 쥐고 있는 정세균 대표는 지난 10월 재·보선에서 승리하며 당을 무난하게 이끌어 왔다. 그런 그가 야권 대통합이란 그림을 그려낸 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그 위상이 급속히 높아질 것이다. 정 대표의 임기는 7월까지다. 그 후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

지방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연임까지 성공하면 당 주도권을 확고히 다지면서 야권의 유력 주자로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한명숙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건넸다고 주장하는 대한통운 곽영욱 전 사장 사건과 관련해 한 전 총리, 곽 전 사장의 만남 자리에 정 대표가 동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당내 비판세력의 견제 움직임은 강화되는 분위기다.

춘천에서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당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손 전 대표는 10·28 재·보선에서 수원 장안에 진을 치고 승리를 따내면서 수도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에겐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게 틀림없는 만큼 그는 선거 때 적극 움직일 것이다. 이후엔 7월 당권 경쟁에 나서 차기 대선 준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동영 의원도 지방선거 전에는 민주당 입당이란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 의원은 차기 대선을 위해 당에 안착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서 입당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세균 대표가 제동을 걸고 있는 게 문제다. 정 대표는 정 의원 입당에 대해 ‘친노 세력과 함께 일괄 복당’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입당이 미뤄지는 속내는 정 대표와 정 의원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틀어진 두 사람의 감정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정 의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중진 그룹의 박주선 최고위원은 “지방선거 이전에 손학규 전 대표는 복귀해야 하고, 정동영 의원도 입당해야 한다”며 “선거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두 사람의 차기 행보에는 부담이 되겠지만 그 역시 그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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