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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지켜진 故최종현 회장의 ‘500억짜리 약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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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호 34면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난 건 1998년 8월 26일이다. 장례는 그가 생전에 자주 얘기했던 대로 화장으로 치렀다. 최고의 화장시설을 만들라는 유언도 남겼다. 최 회장의 유지를 담은 장례문화센터가 세종시 건설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남면에 1월 12일 문을 연다. 세상을 떠난 지 11년여 만이다. SK그룹은 이 센터 건설에 500억원을 들였다. 시설은 세종시에 조건 없이 기부했다. SK그룹이 기부한 시설은 장례식장과 화장로 10기가 있는 화장장, 2만1442기를 수용하는 납골당과 주차시설이다. 세종시는 주변 35만7000㎡(10만8000평)에 장례시설을 갖춘 은하수공원을 짓기로 했다.

송상훈 칼럼

최 회장의 유지는 왜 이리 뒤늦게 결실을 본 것일까. 사정이 있었다. SK그룹은 2001년 서울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에 화장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기본계획을 세울 때부터 기부를 전제로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대기업이 화장장 사업까지 진출하려 한다며 반대했고 SK는 세종시로 방향을 돌려 2년 만에 공사를 마쳤다.

최 회장이 장묘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80년 유공을 인수한 후부터다. 울산 정유공장에 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헬기를 구입한 최 회장은 길에서 까먹는 시간을 줄인 대신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묘지로 뒤덮인 국토를 하늘에서 본 것이다. 최 회장은 “좁은 땅에 묘지가 너무 많다”며 장례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 화장과 화장장 건설이다.

최 회장의 이런 생각은 그가 지닌 기업관이나 경영이념과 통한다. 풍수지리 전문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최 회장을 보고 토정(土亭) 이지함을 떠올렸다고 한다. 토정은 당대 기인이자 사통팔달의 뛰어난 선비였다. 그는 천문·지리·의약·복서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고, 당대의 학문이나 선비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최 전 교수는 최 회장의 기업관이 다른 최고경영자들과 다르고 기업이익 사회환원을 강조하는 점이 토정과 닮았다고 했다. 최 회장이 장례방식으로 화장을 택하고 화장장을 짓도록 당부한 것도 평소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최 전 교수는 최 회장의 선산이 있는 수원 인근의 산소를 둘러본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지나치게 초라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필부의 무덤처럼 산소가 몇 개 있는 무덤덤한 야산에 둘러싸인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것을 방증하듯 최 회장은 생전에 “나는 부모님의 유골 덕을 보고자 산소 잡는 사람들을 매우 경멸하며 집터는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화장의 유래는 분명치 않지만 한반도에는 신석기 시대에도 화장을 했던 흔적이 있다고 한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화장이 성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효성왕·선덕왕·원성왕이 죽은 뒤 화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왕조의 여러 왕과 왕비도 화장을 했다. 매장이 늘어난 건 고려 말 주자학과 함께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들어오면서다. 관(冠)·혼(婚)·상(喪)·제(祭) 절차를 담은 주자가례의 핵심은 상, 특히 매장 방식에 있다. 주자는 까다로운 절차를 어떻게 지키느냐는 물음에 “다른 것은 몰라도 화장만은 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1912년 일제 강점기에 ‘묘지·화장·화장장에 대한 취체 규칙’이 발효돼 화장을 강요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선 화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최 회장의 솔선수범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작용했을지 모른다. 어찌 됐든 최 회장 사후 화장률은 가파르게 올라갔다. 91년 17.8%였던 화장률은 2001년 28%를 기록하다 2005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최근 수치는 전국 평균 59%인데, 서울·부산을 포함한 대도시는 70%를 웃돈다.

이제는 화장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골 처리 문제를 생각할 때다. 화장과 함께 느는 게 납골묘다. 최근 늘고 있는 아파트형 납골묘는 보는 이를 섬뜩하게 한다. 납골묘가 들어선 산 전체가 마치 전시 벙커처럼 보일 정도다. 다행스럽게 정부는 지난해 수목장과 같은 자연장을 합법화했다. 최 회장 10주기를 앞둔 지난해 그의 가족은 선산에 안치해 둔 최 회장 유골을 수목장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앞으로 설 연휴 등 가족이 모일 기회가 잦아진다. 어떤 집안이건 죽음과 장례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새해부터 장례 이야기를 꺼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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