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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스파이혐의 '모이세예프' 무죄판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998년 한.러 스파이사건의 당사자였던 발렌틴 모이세예프(54)러시아 외무부 아태1국장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러시아 대법원은 25일 모이세예프에 대한 간첩사건 상고심에서 무리한 법적용과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모스크바시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연방보안국(FSB)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FSB의 권한이 확대되는 가운데 나온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1심과 2심은 모이세예프와 변호인들이 "증거가 불충분한데다 증거가 조작됐을 뿐 아니라 강압에 의해 허위 자백했다" 고 주장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취임후 서울보다 평양을 먼저 방문함으로써 생긴 한.러간 껄끄러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을 배려한 결과가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편 그동안 모이세예프 사건을 '정보기관의 날조에 의한 인권탄압' 이라며 이의를 제기해온 인권운동가들은 간첩 혐의로 FSB에 의해 기소됐다가 최근 무죄를 선고받은 환경운동가 니키틴 사건에서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법부가 양심을 지킨 사례" 라며 크게 환영했다.

유리 게르비스를 비롯한 모이세예프의 변호인들은 "수감 중인 모이세예프 본인은 즉각적인 석방결정이 내려지지 않아 실망했겠지만 이제 FSB가 새로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이번 사건은 조만간 종결될 것" 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내 최고의 한국 전문가이자 친한파였던 모이세예프는 98년 7월 4일 한국대사관의 조성우(趙成禹)참사와 함께 자택 앞에서 체포됐었다.

FSB는 이후 모이세예프가 93년부터 한국측에 포섭돼 趙참사로부터 수시로 금품을 받고 장기간 협력해왔다면서 趙참사를 기피인물로 지정, 공개추방했다.

이에 한국측은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올렉 아브람킨 참사관을 추방, 양측의 갈등이 계속됐다. 이후 한국측은 러시아의 강공에 밀려 러시아에 근무하던 5명의 안기부 직원들을 철수시켰으며 이 사건 여파로 박정수(朴定洙) 외무장관이 물러났다.

한편 모이세예프가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그동안 이 사건과 연관돼 불이익을 받았던 한국측 관련자들의 명예회복 여부도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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