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동방 포석' 북에 세력쌓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러시아가 북한과의 관계복원을 계기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에 본격 나서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신남북시대' 의 여명기(黎明期)를 활용, 지난 19일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과 경제협력 등 다양한 지원과 협력을 다짐한 것도 바로 이런 전략에서였다.

푸틴은 또 북한 미사일 해결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그동안 북.미 양자(兩者)차원에서만 논의됐던 미사일 문제를 주변국이 참여하는 다자(多者)차원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러시아는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소원했던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러시아의 외교에 대해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이른바 '신동방(新東方)정책' 의 일환" 이라고 해석한다.

중국과 손을 잡고 미국 일극주의(一極主義)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도 신동방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외교안보연구원 유석렬(柳錫烈)교수는 " '강한 러시아' 를 주창해 온 푸틴 대통령이 동북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한 외교정책을 수립했다" 면서 "북한.중국과의 관계복원도 그같은 외교노선의 일환" 이라고 분석했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는 유럽권 국가이면서 동북아권 국가로 분류된다. 북한과는 17㎞의 국경선을 접하고 있어 동북아 지역의 신질서 개편과 무관할 수 없는 국가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동안 유럽쪽 외교에만 치중, 동북아 지역을 홀대했다는 비판의 소리가 내부에서부터 불거져 나왔다. 바로 이같은 내부반성이 신동방정책을 이끌어 낸 주된 요인으로 정부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신동방정책 대상 지역은 한반도.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의 극동지역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 극동 지역은 사할린.하바로프스크 등 6개 주와 사하 자치공화국 등으로 8백여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은 소련 해체 이후 중앙정부의 홀대로 경제와 산업이 침체되고 실업률 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러시아가 남북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하려는 것도 이 지역의 경제회복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러 관계 복원 등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동북아 영향력 확대를 위한 외교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펼치고 있다" 면서 "하지만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희망하고 있어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이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이철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