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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왜 '박정희 기념관' 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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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논란을 빚어온 고(故)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기념관이 드디어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주변 공원 내에 건립케 됐다.

사업 주체가 '朴대통령 기념 사업회' 라는 민간형태를 띠고 있지만, 소요예산 7백억원 중 2백억원이 정부 지원금이라는 점에서 기념관 건립의 타당성과 역대 대통령과의 형평성 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 사업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본격화됐으며, 청와대 비서실장.정무수석.행정자치부장관.권노갑 민주당 고문 등 현 집권층의 비중있는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개인 기념관을 민간단체에서 건립한다면 시비걸 일도 아니다. 그러나 국민 세금이 사용되고 정부 고위인사를 포함한 집권층에 의해 주도되는 실질적 '정부사업' 인 셈이어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념관 건립엔 대구.경북 민심을 겨냥한 집권층의 정치적 계산도 읽힌다.

우선 朴대통령 기념관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뤄졌는가 묻고 싶다. 朴대통령은 산업화 측면에선 위대한 지도자이나, 민주화 측면에선 개발독재자로 그 공과(功過)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의 예를 들 것도 없이 기념관이라면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시점에서 국민적 합의로 추앙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정해 기념하는 전시장이다.

아직은 당시 정권에 대한 이해당사자가 수없이 생존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객관화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립되는 개인 기념관에 일부나마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 스럽지 않다는 생각이다.

개인 업적을 기리는 의미가 아니라 대통령직 수행기간의 각종 자료들을 모아두는 기록관 또는 사료관이라면 건립 의미는 달라진다.

대통령 재임 중 자료는 생생한 현대사 자료로서 귀중한 공적 재산이다. 이를 정리하고 후대에 남겨야 미래를 창조할 국민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대통령 기록관은 필요하다.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도 없는 터에 이승만 대통령의 수십만장에 달하는 자료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한 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일부 대통령은 그 자료들이 결코 사유물이 아닌데도 퇴임 후 이를 사저로 옮겨 훼손우려까지 일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 기록관 건립은 시급히 요청되는 사안이다.

한가지 제안을 한다면 역대 대통령 모두를 포함한 대통령 기록관을 연립형으로 짓자는 것이다. 朴대통령 기념관만으론 현대사를 한자리에 꿰뚫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대통령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역대 대통령의 사료들을 수집해 정리.보관하고 연구하는 현대사의 보고(寶庫)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기왕 서울시가 상암동 공원터 5천평을 내놓기로 했다니 조금만 더 희사한다면 역대 대통령 기록관 건립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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