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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아동복지시설 선덕원 합창단 지휘자 이준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서울 은평구 응암동 아동복지시설인 선덕원 지하 강당은 매주 금요일 저녁만 되면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활기를 띤다. 하지만 지휘자 선생님이 지휘봉을 들면 이내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시선이 한데 모인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27명의 제각각인 목소리를 아름다운 하모니로 엮어 내는 주인공은 지난해초부터 합창단을 지도해 온 이준(李浚.41)씨.

대학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李씨는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으로 유학가면서 지휘로 전공을 바꿨고 1996년 귀국한 뒤 서울YMCA 코랄앙상블 등 여러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동창 소개로 처음 지휘를 맡았을 땐 어린이 합창단을 지도해 본 경험이 없어 무척 난감했어요. "

하지만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어린이합창에 대한 낯설음도, 음악 훈련을 받지 않은 아이들의 투박함도 아닌 아이들의 닫힌 마음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가슴속에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이라 마음의 빗장을 푸는 일이 더 큰 숙제였습니다. "

이후 李씨는 한편으론 아이들 얘기를 잘 들어주다가도 한편으론 엄한 모습을 보이며 아이들을 지도해 갔다.

"다행히 이런 저의 모습에서 부모의 정을 느꼈는지 아이들이 잘 따라줬어요. "

李씨의 열정과 아이들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지난 5월엔 서울 종로5가 연강홀에서 감격의 첫 정기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잘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더군요. 모두들 깜짝 놀라는 모습들이었어요. 아이들도 늘 도움만 받다가 뭔가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

이들의 숨은 실력이 알려지자 여러 곳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달 말에는 서울 지하철 7호선 개통 기념 연주회에 나서기로 했고 다음달에는 서울대병원에서 공연한 뒤 오는 11월엔 두 번째 정기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아이들이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과정을 통해 남을 배려할 줄 알게 됐다는 점이 가장 보람된 일이에요. "

지난 스승의 날에는 27명 각자가 한 장씩 써서 연결한 엽서 모음을 선물로 받고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는 李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며 "앞으로 진정 실력으로 인정받는 합창단으로 키우고 싶다" 고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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